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서창원 원장)이 22일 오후 1시 30분 ‘19세기 위대한 전도자, 설교자인 존 케네디 박사의 생애와 사역’이라는 주제로 제35기 온라인 정기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오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날 1부 순서인 개회예배는 김준범 목사(양의문교회)의 인도로, 이승찬 목사(하남주사랑교회)의 기도, 강문진 목사(진리교회)의 설교 순서로 진행됐다. 설교를 맡은 강문진 목사는 ‘성숙한 교회가 되는 길’(엡4:11~16)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설교에서 강 목사는 “교회가 성숙하게 되는 길은 먼저, 온 성도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일치되어야 하며, 두 번째로 개혁주의 신앙, 칼빈주의 신앙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마지막 세 번째로 성도들 간에 유기적인 연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강의 시간에는 윌리엄 맥클라우드(William Macleod, 킹스우드 프리처치 담임목사, 프리처치신학교 학장 및 조직신학 교수) 목사가 ‘존 케네디 박사(Dingwall, 1819~1894)’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으며 서창원 교수(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가 통역을 했다.
윌리엄 목사는 “내가 존 케네디 목사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내가 자란 북쪽 하일랜드지역에서 가장 탁월한 박사였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는 매우 긍정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고 그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그는 스코틀랜드 신학과 교회 생활에서 하나님의 은총 아래 그 어떤 분들보다 가장 잘 보존되어야 할 만한 일을 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어 “오늘날 스코틀랜드에서 훌륭한 개혁교회가 작은 규모로라도 남아 있게 된 것은 다 그분 때문”이라며 “큰 교단인 스코틀랜드의 국교회(The Church of Scotland)는 거의 전적으로 자유주의 교단이 되었다. 동성애자들도 목사로 허용되었고 성경의 영감설과 권위를 부정하며 대속적인 구속 사역을 거부하는 교단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와 제가 속해 있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연속), 자유 장로교회 그리고 연합장로교회(Associated Presbyterian Church)들이다 존 케네디 목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의 생애와 설교와 저술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며 도전을 준다. 그의 최고의 저술은 ‘로스주에서 선조들의 날들’이다”며 “이 책은 케네디 박사 시대 이전의 수백 년 동안 스코틀랜드의 북쪽 지역에 살았던 목사들과 월 평신도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존 케네디는 1819년 8월 15일에 태어났다. 그는 인버네스의 북쪽 지역인 블랙 아일이라는 섬에 있는 킬아르나 혹은 레드 캐슬이라는 지역의 목사인 존 케네디의 넷째 아들이었다. 그의 부친 역시 신실한 복음 사역자였고, 로카르론 근처 기숀 지방에 있는 스코틀랜드 북쪽에서 매우 경건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며 “소설들을 신학보다 더 좋아했고, 교양과목을 다 마친 후 1840년 애버딘대학교 신학부에 입학했고, 그는 회심 전에 목사가 되고자 했다”고 했다.
이어 “그의 생애에 대전환점은 경건한 부친의 죽음을 통해 돌이키게 되었다. 부주의한 삶을 버리고 영원한 것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옛것은 지나고 모든 것이 새것이 되었다. 하나님의 위엄과 주권에 사로잡혀 신적 계명의 순결함과 자신의 넘치는 죄악들에 대해 깊이 자각하여 시련을 통해 풍성한 경험적 사역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케네디는 후에 그의 경험을 세 가지 독특한 양상을 지닌 것으로 연결지었다”며 “먼저, 하나님을 대적한 죄책감으로 형언할 수 없는 심적 고뇌를 겪었다. 특히 지금은 이제 영원히 내 곁을 떠난 부친의 훈계와 교훈들과 모범을 무시했다는 점에 대하여 엄청 괴로워했다. 둘째, 자신을 기도와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매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전적의 절망에 침몰되지 않도록 힘을 썼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은 자신과 같은 죄인의 괴수에게도 열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평안과 확신이 찾아왔다. 이제부터 그는 하나님의 열렬한 일편단심의 사람이었다”고 했다.
윌리엄 목사는 “대분열은 1843년에 일어났다. 450여 명의 목사가 수많은 성도와 함께 스코틀랜드 국가교회를 떠났다. 그 숫자는 대략 국가교회의 1/3에 해당했다. 하일랜드에서 주민들의 절대다수가 자유교회에 속하게 되었다. 이것 때문에 목사들의 수가 절대부족이어서 케네디의 신학 수업도 단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리고 안수를 받았다. 딩월(인버네스에서 북쪽으로 20마일(30여 km) 정도 떨어진 곳, 하일랜드의 중심지)의 목사는 스코틀랜드 교회에 남아 있었지만, 성도들 상당수는 자유교회와 연합되어 있었다. 이 회중이 케네디를 자기 교회 목사로 청빙하여 안수를 받게 하고 1844년 2월 13일에 위임식을 거행했다. 그의 형 도날드는 그의 부친의 뒤를 이어서 킬러르난 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존 케네디는 그런 성찬 시즌에 가장 인기 있는 설교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성찬 시즌에 하일랜드와 아일랜드 전역에 초빙되어 다니면서 설교를 했고, 심지어 글라스고와 에든버러 도시까지도 부름을 받아 설교를 하곤 했다”며 “글라스고 헤럴드 신문은 ‘설교자로서 그의 인기는 로스 주 지역의 거대한 성찬 모임에서 그가 참여하지 않는 한 온전히 성찬식이 거행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라고 보도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또 “ 케네디는 하일랜드 전역에 교회의 사상과 영적인 힘을 형성하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딩월 노회 서기로도 섬겼다”며 “그리고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로스 대회의 서기로도 섬겼다. 1873년에 애버딘 대학은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고 했다.
그는 “존 케네디는 보통 키보다 작았으나 매우 폭넓고 강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1880년에 그는 당대에 치료약이 없던 당뇨병에 걸려 고생을 했다”며 “건강 때문에 대륙에 세 번이나 방문했지만, 이탈리아를 방문한 후에 돌아오는 길인 1884년 4월 24일에 알란 브리지에서 사망했다.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에든버러에서 한기에 걸렸고, 그의 나이 65세 때 40년의 목회 생활을 한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을 위하여 수많은 군중이 운집하였고 60여 명의 목사들이 참석했다”고 했다.
이어 “그의 목회 업무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에 5번 정규 예배를 인도해야 했고 각각 충분한 분량의 설교를 해야 했다”며 “주일에 두 번의 오전 예배와(한 번은 갈릭어, 한 번은 영어 예배) 주일 저녁 예배는 두 언어를 번갈아 가면서 인도했다. 주중의 기도회는 각각 갈릭어와 영어로 인도했다. 삼일 예배 때 케네디는 시편을 연속적으로 강해했다. 이것은 그의 목회 사역 내내 진행된 양상이었다. 시편 150편은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설교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설교와 관련하여 케네디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울 수 있다”며 “먼저, 설교할 내용을 주의 깊게 생각하라, 그리하여 그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만일 이게 당신의 마음속에 분명하지 않으면 청중들의 마음속에서도 분명히 이해될 수 없다”고 했다.
또 “둘째로 설교를 읽어가지 말고 당신의 마음에서 청중들의 마음을 향해 말해야 하며, 셋째로 진지함과 열정으로 설교하라. 여러분의 청중들의 영원한 복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넷째로 신랄하게 설교하라. 그리하여 여러분의 청중이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았으면서도 천국 가는 여정에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로 그리스도를 설교하고 성경의 위대한 진리들을 풍성하게 전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양들이 배부름을 얻게 해야 하며, 여섯째로 복음 전도설교를 도전적으로 하라.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에게 값없이 그리스도를 제공하고, 마지막 일곱째로 당신은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전하는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사람들을 흥겹게 한다거나 기분 좋게 하려고도 안 되며 당신 자신을 설교하는 것도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케네디는 그의 교회에서 주일성수에 대한 주제에 대한 핵심적인 강의를 했다(1883년 9월 16일). 이 내용은 결과적으로 그해 설교들을 출판하면서 간행물로 발간되었다”며 “그는 우선 ‘신적 권위와 4계명의 영구적인 의무’로 여겼고, 그다음 ‘4계명이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주일성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 개개인에 의해서 어떻게 주일을 성수 할 것인가?’ 등을 다루었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