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카톨릭교회에 대한 개혁이었지만, 중세 르네상스의 혼탁한 성문화에서도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즉 프로테스탄트 혁명은 성에 다시금 엄격한 종교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성경에 기록된 성과 결혼의 긍정적 측면, 즉 부부간의 사랑을 재발견하였다. 프로테스탄트의 복음주의적 주장은 인체, 욕망, 및 섹스에 관한 중세교회의 많은 이슈들을 다시 개혁적으로 보완하고 가르쳤다.
중세 카톨릭교회는 원래 성을 억압하는 경향이 컸으나, 이즈음 더욱 완고해지면서 여성혐오증(공포증)이 유행하였다. 이는 루터가 태어날 즈음인 (한편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1486년 카톨릭 성직자 Heinrich Kramer가 쓴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이라는 책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녀(witchcraft)를 발견하고 징벌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었다. 마녀는 대개 여자였기 때문에 이 책은 중세의 여성혐오증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신학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적 견해가 강화된 결과이다.
그러나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중세시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중요한 신학 논쟁에서 추론적인 철학으로부터 떠나 복음서의 복음주의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을 결함이 있는 남자라고 본 것에는 반대하였다. 즉 여자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중세시대의 남성 우월의 사상에서 혁명적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역할에서는 남녀가 같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여성을 신체 상태나 인격에서 생식과 자녀 양육과 가사 일에 적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남녀가 다르지만, 그래서 상호성을 주장함으로 남녀 차별적 시각이 있다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남편은 아내들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하였던 바에서 보듯, 당시 루터가 지적한 것은 성적 관계의 기반은 상호간의 사랑과 존경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평등주의적(egalitarian) 결혼을 말하였던 것이다. 루터와 카트리나와의 결혼은 그런 결혼이었다.
루터는 죄짓기 전의 아담과 이브의 섹스는 정결하다고 보았다. 인체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로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총의 확고한 표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는 몸의 신성함과 고상함은 순결과 절제에 있다고 보았다. 몸의 고상함을 훼손하는 행동을 더러움, 부도덕 및 방종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는 우리의 몸은 명예로운 순결과 명예로운 결혼에 복속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 섹스와 생식은 타락함이 없는, 순종의 행위로 일어난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성적 욕망도 성행위(섹스)도 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원래 인간을 사랑하시어 여전히 결혼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시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루터는 무조건적 금욕은 잘못된 것이라 보았다. 루터는 독신을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그 독신을 남용하거나 결혼을 비하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지 고린도전서 7:32–34의 말씀처럼,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나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독신도 좋다고 하였다.
루터는 동성애(당시 용어는 sodomy)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자연(自然 nature)에 심어준 남자의 여자를 향한 자연스런 열정과 갈구에서 떠난 것이라 하였다. 이는 중세 기독교 성윤리와 마찬가지다. 그는 동성애를 사탄에서 온 것이라 하였다. 사탄은 자연스런 욕망을 더럽히고 자연에 반하는 욕망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용납될 수 없는 성적 행동들을 소도미의 항목에 포함시켰다. 그 모두는 자연과, 선의의 법과 존경을 거스리는 행동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세속적 정부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 즉 사회를 더욱 거룩하게 (기독교적으로) 만드는데 책임을 가지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첫 목표는 가장 눈에 띄는 공공 매음굴을 없애는 것이었다. 매음굴이 사회의 “관용”의 가장 뚜렷한 예로서, 간음죄의 온상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프로테스탄트는 (중세 카톨릭교회와 달리) 매춘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또한 현실적으로 매독의 창궐 때문이기도 했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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