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룻기 1장 15-22절
룻기의 배경은 사사가 치리하던 BC 1,100년 쯤이다. 사사시대라 함은 종교, 도덕, 정치적으로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이다. 설상가상으로 약속의 땅에서 큰 흉년이 들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탄식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구출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젖과 꿀을 누리고 살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은 변질 되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는 배은망덕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이 오늘 룻기를 통해 말씀하신 바가 있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룻기의 시작은 어떻게 되는가? 한 가정의 몰락을 소개한다. 그 이유는 한 가정의 몰락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몰락사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의도가 깔려 있다. 룻기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의 가정이 모압 땅으로 건너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압 땅은 풍요의 땅이었다. 그러나 우상이 판을 치는 가증하고 음란한 땅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멜렉의 가정이 그곳으로 간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이방 문화와 타협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엘리멜렉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라”라는 뜻인데 전혀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비(非)신앙적 선택이었다. 이러한 비(非)신앙적인 선택은 성경에서 다른 인물들도 여럿 등장한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사명을 받았음에도 안락한 다시스를 선택한다. 또 롯이 아브라함과 목초지를 나눠 선택할 때도 타락한 소알 땅을 선택한다. 이러한 비신앙적은 선택의 결과는 무엇인가? 재앙밖에 남지 않는다. 요나는 바다로 던져지는 지경에 이르고 롯은 소알 땅이 유향 불로 심판을 받아 아내마저 잃게 된다. 오늘 본문의 엘리멜렉도 갑자기 죽임을 당하고 모압 여인과 결혼한 두 아들도 죽고 만다. 이제 남게 된 사람은 아내 나오미와 두 자부 오르바와 룻밖에 없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엘리멜렉처럼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는 고백은 있어도 신앙적 결단이 없다면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신앙의 연조가 쌓이고, 성경적인 지식을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결단이 없는 신앙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이렇게 큰 불행을 겪으면서 엘리멜렉의 부인 나오미는 더 이상 소망 없음을 깨닫고 며느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너희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느냐?” 이제 돌아가라. 그때 오르바는 우물쭈물하다가 모압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룻은 선택은 달랐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결단한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의 결단은 너무나도 무모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따라간다는 것은 평생 비주류로 살아감을 말한다. “암몬 사람과 모압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23:3). 당시 이방인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주받아 남편이 죽었다고 평생 모욕을 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오늘 유명한 결단력을 내린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절). 이것은 자신의 신앙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단호히 밝힌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멜렉처럼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타협하는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참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검증된다. 평온할 때 되는 것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순간에 진짜 신앙의 고백을 터뜨릴 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은 분명한 믿음을 기뻐하신다. 세상은 이해타산적이다. 그러나 룻은 세상의 계산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계산법을 따랐다.
그에 대한 보응은 무엇인가?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과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22절). 나오미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는데, 마침 보리 추수 시작할 때였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여호와 이레의 공급하심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온 것이 주판을 두들겨서 왔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려주셨고 덮어 주셨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의 삶이 텅 빈 것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유익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의 결단을 내릴 때 하나님이 채움으로 덧입게 될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분명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누리기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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