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하고 더 거룩하고 더 겸손하고 더 순종해야 한다. 이것까지가 회개다. 회개가 기도에서 멈췄다면 아무리 믿어도 아무리 열심이어도 늘 제자리다. 회개만 했음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 닿아가는 것.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이것이 회개의 완성이다... <2월, 작가들의 말말말>
“천국은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져 있단다. 길도 황금길이구. 그곳은 도무지 슬퍼할 일이 하나도 없는 곳이란다. 모든 사람들은 그저 기뻐하고 좋아하기만 하지. 그뿐만이 아니야. 어린아이가 사자와 놀아도 사자가 사람을 물지 않는 곳이야. 독이 가득 오른 뱀도 물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말이야.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하고…….”.. <2월, 작가들의 말말말>
일단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분과 연합되면, 우리의 옛 삶은 끝난다. 우리가 다시 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이 새로운 삶을 산다. 다른 의미에서 그 삶을 사는 것은.. <2월, 작가들의 말말말>
감사일기로 무너진 자존감을 점차 회복하기 시작하며, 감사의 힘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평생 감사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 감사컨설턴트 박수빈 이야기 중에서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행복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감사해서 행복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아빠의 사고를 통해 감사의 힘을 깨닫고, 3차원적인 감사인 ‘그럼에도 불구.. <2월, 작가들의 말말말>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전에 좌정하시어 격리와 접촉의 금지를 통해 수동적으로 자신의 거룩하심을 교훈하셨다. 그러나 이제 신약에서 격리와 차단을 해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능동적으로 자신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신다. 구약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인간과 사물이 거룩케 되었다.. <1월, 작가들의 말말말>
진짜 보물, 영원한 보물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도와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일생을 바친 한 선교사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그것은 곧 지나가고 말 것이다... <1월, 작가들의 말말말>
아브라함에게서 나오는 새 공동체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인간과 창조 세상에 이것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하지만 복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다. 아브라함은 “복이 될지라”라는 명령을 받는다(창 12: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1월, 작가들의 말말말>
전도는 우리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물이나 포옹으로도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으로 전도할 수 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이 그리스 우상에 대해 언급하며 하나님을 전한 것처럼 할 수 있다. 전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되살아난 소망을 타락한 피조물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1월, 작가들의 말말말>
우리는 환경과 상황, 관계에 맞게 각각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운전 중에 옆 차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급하게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화를 내며 그 차를 쫓아가 보복 운전을 할 수도 있고, 흥분해서 연거푸 경적만.. <1월, 작가들의 말말말>
오늘날 우리는 여러 면에서 지구촌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핵의 위협은 아직도 상존하며, 전쟁난민과 기후난민이 동시에 발생하고, 혐오의 정치는 더욱 당당해졌다. 전염병의 주기적 창궐은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한계가 있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이 위기 앞에서 20세기의 생활신앙을 돌아보면.. <1월, 작가들의 말말말>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면, 한순간 불행해지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우위를 점하느냐가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시작점입니다. 거친 돌 같은 인생이라도 그 속에 나를 향한 주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내게 허락하신 시간을 신뢰하며 사는 것 자체가 성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월, 작가들의 말말말>
주일 성수가 무너지면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지 않을 것이고, 예배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 결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서서히 영적인 어둠에 덮여 죄가 가득하고 무질서와 고통 가운데 빠질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주일 성수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 결과를 우리는 눈으로 보며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