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에서 로마길을 타고 유럽으로 간 서방 선교를 바울이 이끌었다면 안디옥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아시아로 간 동방선교는 네스토리우스가 이끌었다고 하겠다. 386년 안디옥에서 출생한 네스토리우스는 428년 콘스탄티노플 주교로 임명되면서 교회의 지도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손상웅의 선교역사칼럼] 현거선 교장과 강석교
해롤드 핸더슨 선교사는 한국인에게 현거선으로 불렸다. 그는 1893년 11월 23일에 미국 인디아나 주 폴트 웨인에서 출생했다. 그 후 1918년 5월 28일에 푸시 선교사와 결혼한 그는 그해 9월 10일에 내한하였다. 동료 선교사의 고사에 힘입어 대구 계성학교 교장이 되던 때가 1920년 10월 30일임으로 내한한 지 2년 차다. 당시 계성학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고 어려운 선교 사역임.. [손상웅의 선교역사칼럼] 내 살로 그 아이를 살리라
1917년 대구에 있는 신정교회(현 대구서문교회]가 남녀연합 전도회를 조직하고 유년 주일학교 지부를 횡정구에 설립할 때 교실용 3칸 초가집 구입 자금을 스위처 선교사가 헌금했다... [손상웅의 선교역사칼럼] 병든 몸으로 사면된 윤정희 女선교사
윤정희는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약 10년간 남만주 봉천지역 한인동포교회에 파송된 선교사다. 윤선교사 파송에는 3년이 걸렸다. 1931년 장로교 여전도회가 재외 동포교회에 선교사 파송 계획을 수립하면서 선교비 400원을 적립하더니 1932년에 남만주 한인 동포교회로 선교지를 확정하고 여선교사 모집을 광고하였고, 1933년에 와서 제6회 장로교 여전도회 총회는 윤정희를 파송키로 결정하였다.. [손상웅의 선교역사칼럼] 3기 선교사역자 사병순 선교사
1912년 조선장로교회는 총회를 조직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해외선교를 계획하였고 조선 500년의 근간이 되었던 유교에 빚을 갚는다는 취지로 유교를 창시한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다. 이에 박태로와 김영훈과 더불어 1913년 6월에 장로교 신학교 6회로 졸업한 사병순 목사가 파송되었는데 이는 그의 첫 번째 선교사역이었다... [손상웅의 선교역사칼럼] 3기 선교사역자 사병순 선교사
1912년 조선장로교회는 총회를 조직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해외선교를 계획하였고 조선 500년의 근간이 되었던 유교에 빚을 갚는다는 취지로 유교를 창시한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다. 이에 박태로와 김영훈과 더불어 1913년 6월에 장로교 신학교 6회로 졸업한 사병순 목사가 파송되었는데 이는 그의 첫 번째 선교사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