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의 최고 전문가로 불리는 명지성모병원 허춘웅 병원장(78)은 지금까지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며 의사의 길을 걸었다.
허 병원장의 꿈은 하나다. 꾸준히 의료의 질을 높여 환자의 온전한 사회 복귀를 돕는 것. 그래서 명지성모병원은 '뇌졸중 전문치료실'과 '뇌졸중 연구소' 등의 시스템과 첨단 의료장비를 갖춰 빠른 대처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예방과 재활에도 힘쓰고 있다.
"돈에 욕심부리지 않고 어려움 당하는 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큰 병원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참 보람을 느낀다"며 "하나님이 사명 감당하라고 주시는 에너지로 앞으로도 환자를 열심히 치료해 나가겠다"고 말하는 마음 따뜻한 의사, 명지성모병원 허춘웅 병원장을 만났다.
시골 청년, 신경외과 의사가 되다
허 병원장은 학창 시절 경상남도 김해군 명지면 진목리라는 시골에서 살며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농사일밖에 모르던 허 병원장의 부모는 아들이 은행원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허 병원장은 한국은행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며 부모님의 바쁜 농사일을 도와드리던 허 병원장은 우연히 부산 시내에 나갔다가 서울대, 연·고대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기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때 허 병원장은 지금처럼 인생을 살면 안 되겠다고 느꼈고, 대학진학의 꿈을 품었다.
"아버지께서는 피란을 와서 동네에 의원을 개업하신 최 의사라는 분과 가깝게 지내셨어요. 그분과 제 전공과목 선택에 관한 얘기를 나누시던 아버지는 의사라는 직업이 좋아 보이셨던지 의과대학에 진학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의사가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책을 통해서 의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2년간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가톨릭대학교 의학과에 합격했습니다."
허 병원장이 의과대학을 졸업할 당시 의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공과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였다. 하지만 허 병원장은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신경외과를 선택했고, 가톨릭대학교 부속 성모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 신경외과 과장,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환자의 수술을 집도해나갔다.
오직 환자를 위해 선택한 길
허 병원장은 환자를 향한 남다른 사명감과 열정이 있는 의사다. 국내에 뇌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했던 시기에 허 병원장은 분초를 다투는 뇌졸중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료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대학병원은 환자를 인턴이 보고 레지던트, 주니어 스텝이 보느라 시간을 다 허비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대학병원의 문턱을 넘기 힘든 환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문턱 낮은 병원을 꿈꾸며 1984년에 구로구 대림동에 명지성모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선택을 하는 데 있어 허 병원장에게 영향을 준 멘토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故 장기려 박사이다.
"의대 본과 3학년 때 장기려 박사가 성모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외래진료를 했는데, 그때 그분의 진료를 돕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다 비우고 다 남을 주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구로구 대림동 인근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많이 밀집해 있었다. 특히 서울 시내 중심가 무허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이 서울시의 이주정책에 따라 내려온 경우가 대다수였다. 허 병원장은 이러한 불쌍한 환자들을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개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 머리를 다쳐서 경막외출혈로 실려 온 환자를 수술해서 살린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회진을 도는데 환자가 없어서 어디 갔냐고 물어봤더니 도망갔다고 하더라고요. 원무과에 찾아오라 해서 불러다가 왜 갔느냐고 혼을 냈더니 치료비가 없어서 그랬다고 하기에, 치료비 안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실밥 제거하고 가라고 했던 일화가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개원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개인병원 경험과 노하우가 없는 허 병원장에게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를 구하기 힘들어 1인 10역을 하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기도 했고, 밀려드는 환자로 온종일 외래를 보고 밤새도록 수술하며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허다했다.
"개원 후 5년까지는 견디고 견뎠는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 대학병원으로 들어갈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병원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됐는데, '원장님이 떠나시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굳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병원을 사역지로 삼다
하나님은 허 병원장의 주변에 믿음의 사람들을 보내 하나님을 영접하게 하셨다. 허 병원장은 선명회어린이합창단 초대 지휘자인 장수철 박사의 딸인 장혜실씨(춘혜의료재단 이사장)와 결혼 후 주님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장로가 되어 누구보다 신실한 신앙인으로 지낸다.
명지성모병원에는 20년 넘게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교회가 있다. 허 병원장이 병원 안에 교회를 세운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병원 개원 당시 간호부장이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어요. 이분이 매주 수요일, 주일에 주변의 여러 교회 목사님들을 초빙해서 환자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드리더라고요. 예배를 통해 환자들이 심적 안정감을 얻어 치료와 재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게 된 이유입니다."
허 병원장은 명지성모병원을 자신의 선교지로 삼고 영적 허기를 느끼고 있는 환우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한다. 병원 이름 때문에 간혹 주위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허 병원장은 병원의 미션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한다'라고 정해놓았을 만큼 확고한 믿음과 신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나가고 있다.
공부하는 의사, 발전하는 병원
척추질환 전문병원은 많지만,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은 드물다. 의료사고의 위험이 크고, 고도로 훈련된 전문 의료진과 고가의 시설, 장비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서 감당하기 힘든 분야이다. 하지만 허 병원장은 개원부터 지금까지 외형적으로 병원을 크게 세우려 하기보다 시설과 장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뇌졸중 진단 및 치료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전부 구비했다. 그 결과 2017년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3기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으로 선정되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3회 연속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수많은 뇌졸중 환자가 수술 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재활이 꼭 필요하지만, 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 허 병원장은 직접 재활병원을 세워야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 뇌졸중 재활전문 병원인 '명지춘혜병원'을 세웠다. 명지춘혜병원 역시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뇌졸중 재활전문병원으로 인정받았고, 100여 명의 전문 치료사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해 뇌졸중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명지성모병원은 '열심히 하는 병원'입니다. 아침마다 7시 30분에 컨퍼런스를 열고 환자 치료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공유합니다. 개인적으로 의사는 항상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환자들이 어떤 병원에 어느 의사가 치료를 잘하는지 다 알고 옵니다. 그래서 회진을 돌 때 후배 의사, 간호사들에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꼭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실력을 갖출 때, 자신감도 생깁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
명지성모병원은 환자를 위해 열심을 다하는 병원이자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이다. 직원들은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연탄배달 봉사활동, 취역계층 의료봉사, 경로당 후원물품 전달, 교통봉사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세계 뇌졸중의 날에는 '뇌 건강 캠페인'을 개최해 체지방검사, 혈압 체크 등 무료 뇌 건강검진과 상담을 통해 뇌졸중 예방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허 병원장은 자신만의 운영철학을 가지고 직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여성 근로자가 많은 병원 특성을 고려해 임신, 출산 및 육아 휴직 활성화 정책을 구현해 경력단절을 방지하고, 육아부담 없이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출산 친화적 문화정착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정년퇴직 이후 능력 중심으로 고령의 노동자를 재고용하고 있으며, 장애인고용 의무수보다 많은 장애인을 채용하는 등 고령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 조성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허 병원장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최근 '제9회 인구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가정뿐 아니라 작은 단체, 큰 단체 모두 내부고객이 참 중요합니다. 내부가 원만하고 서로 갈등이 없어야 조직이 잘 운영이 될 수 있어요. 표창장 받은 것은 참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저 내 식구들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편안하게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뿐인데, 그 뜻을 알아준 것 같습니다. 자랑할 건 전혀 아니에요."
환자를 향한 끝나지 않은 사명과 꿈
허 병원장은 최근 척추질환 분야의 권위자인 서중근 명예원장을 명지성모병원에 초빙했다. 서 명예원장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로 재직했고,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회장, 한일척추신경외과학회 회장, 대한신경통증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일본 척추학회 국제 저널인 'Spinal Surgery'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Asia Spine학회 모체인 한일척추신경외과학회 창설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Asia Spine학회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신경외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사이다.
"뇌졸중으로 병원을 오는 분들이 대부분 연장자인데, 이 중에는 척추질환까지 가진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척추 전문병원이 많이 생겨나면서 의사를 구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고민하던 중 후배의 추천으로 서중근 교수님을 초빙하게 됐습니다. 서 교수님은 한국 척추분야에서 굴지의 인물이시잖아요. 이제는 척추질환 환자가 와도 잘 치료해서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정말 감사하고, 마음이 편합니다."
인터뷰 자리에 배석한 서 명예원장은 "하나님께서 더욱 영광 돌리라고 이 병원에 보내주셨습니다. 뇌 질환뿐 아니라 척추분야의 전문적인 치료를 통해 병원의 위상이 더욱 올라갈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허 병원장은 앞으로 건강이 허락되는 한 환자를 치료하는 사명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체력이 얼마나 견뎌줄지 모르겠지만, 환자를 볼 때 오히려 더 힘이 납니다. 앞으로 남은 꿈이 있다면 병원 규모를 조금 더 키우는 것입니다. 가끔 저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 대학병원에 보내야 할 때 마음이 참 아픕니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된 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이어갈 후배 의사들이 너무 빠르게 앞서갈 때 가끔은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역할도 하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저의 사명을 계속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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