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영적인 ‘시차’, ‘delay’가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본체가 움직이면 우리의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땅에서 실체로 드러나기까지는 시차가 있다. 언제 그림자가 움직이는가? 모른다. 즉시 움직일 수도 있고, 하루 있다가 움직일 수도 있고,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모른다. 그래서 딜레이 되는 시차 동안에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어떤 믿음?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분이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이루어져. 그분이 약속하셨으면 확실히 이루어져!” 이 믿음이 요구된다. 이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믿음은 인내다.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하나님이 행하실 때까지!
- 고성준, <카이로스 : 하나님의 시공간>
상실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치유가 어떻게 믿음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웨슬리는 먼저 믿음으로 하늘의 세계에 대한 눈먼 상태가 치유된다고 본다. 인간의 자연적 상태는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믿음을 통해 이 하나님의 세계를 인지하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를 ‘영적 감각(spiritual sense)’이라 칭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세계에 관한 증거를 받아들이게 되는 특별한 영적 인식 능력이 주어진다고 확신했다. 영적 감각의 회복으로 인해 영혼 전체가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으로 그분을 인식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대한 지식을 더하여 간다. 이제 비로소 참다운 ‘이해의 눈’이 열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그분을 보게 된다(히 11:27). 그는 믿는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사랑의 크심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며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으며 그를 믿는 이들을 자녀로 삼으신 사실을 알게 된다.
- 김동환, <'목사 웨슬리'에게 속회를 묻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구원에 집중하는 종교다. 구원이란 ‘존재의 전환’이다. 죄인이 의인으로, 그 실재가 바뀌는 사건이다. 구원은 또한, ‘신분의 변화’다. 세상 노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 지위가 달라지는 사건이다. 이 전환과 변화를 통해 사망으로 치닫던 운명이 영생을 약속받은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결국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사건이다.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는” 실존의 변환이다(고후5:17). 실존이 변환되는 사건이기에 구원은 새로운 차원에서의 관점과 가치를 주문한다. 그래서 구원은 반드시 관점의 변화를 수반한다. ‘가치관의 전도’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세상 가치를 허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구원의 가치로 새롭게 채워 가야 한다. 부활과 영생, 하나님 나라라는 약속과 소망의 실체를 실존의 근거로 붙잡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전환은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구원의 실상을 세상에 드러내는 강력한 표증이다.
- 이승재,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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