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날>이 법정기념일(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로 제정되었다. 그래서 청년들 사이에서 응원 릴레이가 진행되고 있다. 필자에게도 지목이 왔다. 이에 필자가 생각하는 ‘청년’의 진짜 의미를 담은 구절을 소개한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편 119:9)
솔직히 말해 ‘청년’의 날이라길래 우려가 크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청년’이라는 단어가 그리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년은 뭔가 분노해야 하고, 자신이 혁명가인 양 생각해야 하고, 또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정치권에서도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부추기고 있다.
소위 우파 정당이라 불리던 과거 자유한국당에서도 ‘청년최고위원’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과연 이런 식으로 청년 할당제를 시행하는 게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까? 그것은 여성 할당제가 여성 인권을 높여주지 못하는 것에서 충분히 보여준다.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다가는 평등도 잃고 자유도 잃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할당제로 유혹하며 청년들을 변화의 주체로 만들려 하는 그 모습 속에서, ‘청년’이라는 소중한 단어를 잃어버렸음을 느낀다.
성경에서 말하는 ‘청년’은 좌파들이 말하듯 어떤 혁명이나 변화의 주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의 시기에는 배우고 가꾸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또 하나님께 천천히 나아가는 일을 해야 한다.
‘청년정책’ 하면 청년 할당제(ex. 청년최고위원)나 청년 복지(ex. 청년배당, 반값등록금)를 시행해야 한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똑바로 세우는 게 진짜 청년정책이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는 것이 청년으로서 해야 할 진짜 활동이다. 그것만이 청년의 시기에 늘 꿈을 꾸며 다양한 것을 도전할 수 있게 하고, 또한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는 참 청년의 모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청년은 준비하는 시기이며 세계관을 정립하는 시기이다. 준비도 되지 않고 세계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는데 ‘청년’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일의 주체가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 청년 할당제는 오히려 청년을 무너뜨릴 뿐이다.
청년의 날 응원 릴레이 다음 타자는 특별히 지목하지 않고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 <그리스도의 계절>의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청년의 날이 진정으로 청년을 위하는 날이 되기를 바라며.
“주의 청년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게 하소서. 한 손에 복음 들고 한 손에 사랑을 들고 온 땅 구석구석 누비는 나라 되게 하소서.”
황선우 작가(<나는 기독교 보수주의자입니다> 저자, 전 세종대 트루스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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