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은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된다. 그 이야기는 세상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아우르는 큰 이야기이다. 이 큰 이야기를 영어로는 meta-narrative (메타네러티브)라고 한다. 세계관의 메타네러티브에는 내 삶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의 메타네러티브를 근거로 분석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적 세계관이라고도 한다. 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마이클 고힌은 “성경은 드라마다”라는 책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창조-타락-구속-완성의 4단계로 설명한다. 창세기 1~2장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다.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되는 ‘타락’ 사건이 일어난다. 창세기 4장부터 요한계시록 20장까지는 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그에 반응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복적인 실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성취와 그분을 통한 구원계획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요한계시록 21~22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구속의 완성 이야기를 전한다.
각 세계관들의 메타네러티브들이 동일한 질문에 대해 어떤 다른 대답을 하는지 비교해 봄으로써 각각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다. 이에 우리 삶에서 중요한 아래의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해 각 세계관은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고자 한다.
1. 나는 누구인가?
2. 나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3. 그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4. 나는 결국 어디로 가는가?
먼저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을 생각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정체성의 혼란으로 세상 속에서 괴로워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주신 성 정체성마저 부인한다. 성경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천지만물과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 완벽하게 준비하신 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모든 채소와 과일을 먹을 것으로 허락하셨고, 하늘과 땅과 물속의 모든 생명을 다스리는 일을 맡기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청지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한 기독교인의 정체성인 것이다.
나의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문제가 가득한 삶이었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많은 문제 가운데 있다. 그러나 BC/AD 사이에 그 문제의 근원을 인식하는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예수님 이전의 우리는 죄성으로 인해 문제의 근원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성경의 메타네러티브는 말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난 나의 타락에 있다. 또한 나와 마주하는 상대방의 타락에 있고, 우리가 사는 환경의 타락에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난 선악과 사건의 결과로 먹고 살기 위해 땀 흘리는 수고가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인생의 문제는 인생의 각 시기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그 근본을 추적해 보면 이런 타락들로 인해 복합적으로 발생한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 바로 그 중심에 나의 죄가 있다.
그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문제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 나의 죄에 있다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문제의 해결책이다. 예수님이 이 땅을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면 그분이 내 죄를 해결하신 방법은 무엇인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나의 죄가 못 박혔다면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마땅하다.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의 원인은 나의 타락, 상대의 타락, 환경의 타락 등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상대방이나 환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없다. 오직 내가 죽고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그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매 순간 기도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믿음대로 사는 것이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결국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궁극적 질문이다. 사후의 세계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모양인가? 그곳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 있는가? 나는 그 자격을 갖추었는가? 등 다양한 질문이 있다. 각 세계관은 이들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위임받은 청지기로서 현재를 살 것을 권유한다. 또한 복음을 통해 구원을 얻었고, 죽음 후에도 심판에 이르지 않으며,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약속한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곳은 완전히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완벽하게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임을 믿는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대답을 분명히 가졌다면, 현 세상의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방법, 즉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즉 복음만이 그 답이 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자유케 되는 놀라운 은혜로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넉넉히 이기기를 기도한다.
묵상: 내가 지금 당면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이 메타네러티브에 대입해 묵상해 보자?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