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 사태와 아울러 기독교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계속 두드러지는 문제는 단연코 “주일성수 문제”다. 과거에도 일요일을 주일로 성수하는 문제가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인들, 혹은 율법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공격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이 정통교회에 그다지 큰 고통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정부에 의한 예배 통제가 종교의 자유 문제와 맞물리면서 사람들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일요일을 주일로 성수하는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목회자들은 성경에 주일성수가 문자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문을 제시한다. 어떤 목사님이 “‘주일성수’라는 말은 구, 신약 어디를 봐도 발견할 수 없다. 성경에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는 말도 없다. 안식일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극히 중요한 날이었음에도 말이다.”라고 쓴 글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성경에 “주일성수”라는 표현이 없기 때문에 성경적이지 않다는 논리가 과거 이단들이 삼위일체가 성경에 없으므로 비성경적이라고 했던 공격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하신 분이 이단이라거나 잘못된 분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분이 어떤 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논리로 정통교회가 생명을 걸고 지켜왔던 귀한 유산을 비성경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를 따르게 된다면 삼위일체, 섭리, 영화 같은 신학적 용어들도 정당성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더구나 이분은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십계명 중 4계명도 예수님으로 인해 폐지되었고(abrogate), 종결되었다(abolish)”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주일성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통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했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는 인용문은 도대체 어떤 문맥 가운데 언급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분의 각주를 보니 대략 4페이지에 언급된 칼빈의 주장을 본인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교회의 주일성수 폐지, 혹은 종결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주일과 같은 한 날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의 유익성을 변론하고 있다.
“안식일이 물론 폐지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1) 정해진 날들마다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신비한 떡을 떼며, 공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2) 종들과 일꾼들을 노동에서 쉬게 해 주어야 한다....(중략)…. 그런데 그 모임들을 위하여 날을 지정해 놓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모임을 가질 수 있겠는가?”1)
물론 날과 절기를 유대인들이나 가톨릭 신자들처럼 미신적인 의미로 지키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바울도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을 보고 자신의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했다(갈 4:10-11). 그러나 바울의 우려는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에 대한 정신은 사라지고 미신만 남을 것에 대한 우려였다. 이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은 말로 아주 명확하게 지적했다.
“단언하건대, 사도가 통렬하게 책망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어리석은 생각으로 날을 구분하는 행위이지, 결코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평화를 돕기 위해서 날을 정당하게 선택하여 지정하는 행위가 아니었다.”2)
구약은 분명히 예수님의 성취(fulfill)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복음은 율법 폐지가 아니라, 완성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 그 완성은 형식의 완성이 아니다. 사랑으로 완성된다. 이 사랑은 이웃 사랑에 근거한 하나님 사랑을 호소하는 인본주의 관점과는 다르다. “하나님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웃사랑”이다. 이 개념은 하나님 사랑이라는 종교적 이기심을 위해 이웃 사랑을 뒷전으로 돌려도 된다는 비중(比重)의 논리가 아니다. 이웃을 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님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는 전제적 논리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 주관자이심을 믿는다. 이 재앙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결과임을 고백한다. 때문에 불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재앙이 빨리 종식되는 길은 하나님을 더 온전히 예배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국가적 위기가 심각할수록 예배는 축소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우리의 불경건과 위선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리에 나오는 것이 성경적이다. 국가적으로 위기가 심할수록 신자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고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시고, 경제 위기를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마땅하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길임을 인정할 것이다.
미주
1) 기독교 강요.Ⅱ.8.32.
2) 기독교 강요.Ⅱ.8.33.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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