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교회생활을 경험하면서 계속 떠나지않고 필자의 머릿속에 머무르는 사고의 단초는 다름아닌 ‘뷰로크라시 영(靈)의 포로’에 관한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뷰로크라시(bureaucracy)의 유전적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찌기 베버는 근대사회의 효율적인 조직구조를 위해서는 합법적 지배에 입각한 뷰로크라시적 지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뷰로크라시는 주지하는 바, 법과 규정에 의해 동의된 합법적인 권한에 의한 지배체제이다. 따라서 계층적인 권한 행사는 비인격적인 특성을 가진다.
뷰로크라시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사회는 물론 여러 형태가 있는데 각각의 조직은 과제와 역할에 따른 특징이 있게 마련이다. 조직사회는 집단사회 이기도 하므로 자연 집단의 목적에 따라 집단의 성격이 규정되어 진다.
정당이면 정권을 잡는 것이, 생산단체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단체는 신앙을 고양하고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여느 모임과 마찬가지로 교회나 교단 그리고 신학교도 조직과 연계될 수 있다. 그런데 신앙 조직엔 세상 조직을 넘어서는 고유한 자율성과 생명력이 깃들어 있으므로, 신앙조직에 뷰로크라시의 구조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현격하게 양산될 소지가 많다.
우리는 뷰로크라시의 순기능이 규정과 수직적 위계질서임에 반해, 역기능으로 목표와 수단의 전도(傳導), 관료제적인 병리적 행동, 규칙과 규정 적용의 오류와 구성원의 소외 등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앙 조직의 목표는 구성원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한 성령 안에서 밀도 있는 성령의 충만함과 자유로운 역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 서로 교통하고 공감하는 긴밀한 영적인 유대감이 형성 되어지고 시간이 감에 따라 더 비젼이 증폭되고 물리적인 수량도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신앙 조직에서 어떤 이슈가 쟁점이 되었을 때 상부 인사들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방법은, 위계질서라는 뷰로크라시의 순기능을 가동하는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신앙 조직의 특성과 목표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따라서 신앙 조직에는 중앙 집권적이고 관료적인 체제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지체 의식에 입각해서 개 조직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융통성 있는 미네랄적 구조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기계적이고 폐쇄적인 뷰로크라시와 대조되는 것으로 형식주의나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기체적이고 개방적인 조직 형태인 애드호크라시(adhocracy)가 있다. 전자가 개념적 목적적 적용이라면 후자는 현실적 환경적인 적응이라 할수 있다.
즉,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직무와 권한 및 책임관계의 탄력성, 분권적 의사결정, 수평적 상호작용 등의 형태를 갖춘 조직이 바로 애드호크라시(adhocracy)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때, 요즘 공론화 된 모 신학교의 이슈엔 상당히 뷰로크라시적인 폐단이 농후한 것 같다. 무엇보다 과거 동성애 경계를 위한 강의에 관한 직무와 권한과 책임은 일차적으로 강의를 맡은 당사자에게 탄력성 있게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강의 내용에 관한 의사 결정과 피드백에 대한 이슈 또한 강의 밖의 직임자가 아닌 직접적인 강의 제공자와 수강자와의 상호 소통의 열린 관계성에서 문제 해결의 키를 찾도록 건설적인 선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강의 담당자와 상부 조직과의 연계 또한 수직적 위계질서에만 의존치 말고 수평적 동반자적 상호협력에 의해서도 맺어져야 할 것이다.
요컨대, 바야흐로 우리나라의 신앙조직 사회는 표준화된 고정적이고 계층적인 구조 일변도에서 벗어나 보다 신축성 있고 적응력이 있으며 혁신적인 애드호크라시적 구조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신앙 조직이 추구하는 본질에는 고유의 자유로운 영적 가치를 수호하는 특성적인 생명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뷰로크라시적 특성으로, 제재 조치 시에, 비인격적인 성격의 위계적 권한 행사를 하는 것이 인신공격이나 감정개입을 방지하기 위한 거라지만, 신앙조직 사회에서 이의 부적절한 적용은 되려 권력의 오용을 낳고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적 가치에 역행할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더 많은 상호간 인신공격과 감정 개입이 증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술한 모 신학교 내의 요즘 상황이 이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 조직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설립 정신과 목적이 분명하고, 근본 설립 취지에 의거해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통찰력과 실천의지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비전 없이 명목상의 가치만을 추구하게 되거나, 각자 자기 이익의 재료만을 생각하는 편협성만을 부추기거나, 경쟁 의식으로 인한 사고의 빈곤 속에서 앞을 다퉈 외견적 신분 상승(?)의 통로적 수단으로만 전락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용어가 아닌 신앙적 용어를 적용할 때 상기한 류의 부적절한 적용 사례 등을 ‘세상 영’의 개입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적이고 전근대적인 고정관념이나 둔감한 영적 감각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에, 우리가 사는 동안 부단히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이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이란 잠재적인 구습에서 벗어나 우리를 사로잡는 어떤 생각의 정체를 간파하고 통시대적이고 초시대적인 복음의 진리를 차곡차곡 내재화하고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깨우치는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
박현숙 목사(프린스턴미션, 인터넷 선교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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