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에 관한 법률은 의학 발달에 따라 수정 보완돼야”
한국성과학연구협회(회장 민성길, 이하 성과협)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예방법 19조와 25조의2‘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과 관련, 20일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성과협에 따르면 지난 서울서부지법 신진화 부장판사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과 관련해 이 법 19조와 25조의2가 위헌인지 판단해달라고 지난해 11월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해 현재 심리 중이다.
지난 2006년 44세 동성애자인 남성 A씨는 HIV 확진 판정을 받은 후 꾸준히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고 있었고, 3개월 마다 HIV RNA 정량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가 조절 되는 중이었다. 그러다 2018년 7월 다른 동성애자 남성과 구강성교를 했고, 상대 남성이 A씨의 HIV 감염 여부를 알게 되면서 그를 고소한 사건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의 금지)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이고, 제25조(벌칙)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하면서 2항을 통해 “제19조를 위반하여 전파매개행위를 한 사람”을 꼽고 있다.
성과협에 따르면 이번 재판의 쟁점은 6가지로 아래와 같다.
1. 19조에서 ‘전파 매개 행위’나 ‘체액’이 무엇을 의미하는 명확하지 않다
“HIV를 실제 감염시킨 사람을 처벌하는지, 아니면 감염시킬 위험이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건지, 그렇다면 HIV가 조금이라도 포함된 혈액이나 체액을 전파 매개하는 행위가 있으면 바로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그렇다면 정액과 같이 전형적인 전파매개체가 아닌, 눈물이나 땀이 전파되는 순간에도 곧바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콘돔 없는 성행위는 바로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2. 이 법은 HIV 에 대한 뚜렷한 치료가 없던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현재 바이러스가 조절돼서 전파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3. 다른 성매개 전파 질병과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4. 19조로 인해 “감염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행복추구권의 침해는 심각하다. 감염인은 사실상 접촉을 동반한 인간적 관계들을 모두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5. 감염인을 벌금형 없이 오직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25조의 2도 “감염인의 행동자유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6.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특별법이기 때문에 형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이 법이 없어도 형법상 상해 등으로 처벌 가능하다. 캐나다나 독일 등 해외 국가에서도 상해죄로 규율해 처벌하고 있다.”
이 중 성과협은 앞의 1~3번을 ‘의학적 쟁점’으로 꼽고 있다. 1번에 대해 성과협은 “HIV를 포함하는 체액은 정액, 질 분비물, 혈액, 모유 ,땀 ,침 ,눈물이 있다. 하지만 모든 체액이 감염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며 “감염을 일으킬만한 충분한 양의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체액은 정액, 질 분비물, 혈액, 모유 뿐”이라고 했다.
‘전파 매개 행위’에 대해서는 “체액이 타인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으로 4가지로 볼 수 있다”며 “성적행위(질식성교, 항문성교, 구강성교), 오염된 주사바늘이나 의료기구, 수직감염(모유수유), 혈액제재 투여”라고 했다.
2번에 대해서는 “HIV가 검출되지 않은 감염인이 파트너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는 것은 의학적 팩트”라며 “하지만 이때 전제는 HIV가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성과협은 “국내의 경우 최근 발표에 따르면 감염자 중 58.2%만이 감염 사실을 알고, 87.5%가 치료를 받으며, 90.1%가 바이러스 억제 목표치에 도달 하였다고 하였다(J Korean Med Sci. 2020 Feb 17;35(6):e41)”며 “이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HIV 감염자 중 치료를 받으면서, 바이러스 억제를 목표치까지 도달한 환자는 전체 감염자의 5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19조와 25조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또 “바이러스가 억제 된다고 하더라고 실제로 바이러스가 전파 될 확률은 0%에 가깝다는 의미이지 0%라는 것은 아니며, 연구가 아닌 현실(real world)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며 “그리고 보통 3~6개월 간격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하는 HIV 감염인들이 검사했던 그 시점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관계를 가지는 그 시점에도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그 시점에 정확히 검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 그 사람의 전파 위험도가 0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3번과 관련해선 “매독, 임질, B형 간염, C형 간염과 같은 다른 성매개 전파 질병에는 이를 금지하는 법령이 없다는 이의 제기가 있다”며 “매독, 임질은 감염자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대개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다. 또한 C형 간염도 과거에는 완치율이 높지 않았지만, 현재는 99% 완치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B형 간염인데 이도 모든 환자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일부 활동성 환자에서만 선택적으로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HIV 감염과 비교해서 다른 성매개 전파 질병은 그 육체적인 고통과 정서적, 사회적인 고통이 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의 문제가 있으면 다른 질병도 그 질병의 위험도에 맞게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아울러 “감염병에 관한 법률은 의학 발달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5년을 주기로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자문하여 법률 개정여부를 결정하도록 부칙으로 정해야 할 것”이라는 추가 의견으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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