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선교사
이만석 선교사

이슬람은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메카에서 계시를 통해 받았다는 꾸란을 근거로 만들어진 총체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이슬람이란 무함마드, 꾸란, 메카, 이 세 가지 기둥 위에 세워진 집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모두 학문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니 검증은 가능한데 검증하려는 행위를 신성모독이라는 틀 속에 가두어 놓고 너무 강력하게 처벌하니 검증하려는 시도 자체를 엄두도 못 내게 만들어 놨다.

오죽하면 그 체제를 “이슬람”이라고 명명했을까? “이슬람”이라는 말은 “복종”이라는 뜻이다. 아무 의심도 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다(꾸란5:101). 인간의 생각은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로 인해 불신자가 될 수 있으니(꾸란5:102) 따지거나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가르친다(꾸란49:15). 무슬림이라는 말은 “복종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들은 그런 체제에서 태어나서 어른들이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그대로 복종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임종을 맞이할 때, 평생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는 착한 무슬림이라고 생각하면서 죽는 것이 보통 무슬림의 인생이다.

그들은 무슬림이기 때문에 생각할 능력이 있어도 의심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눈과 귀를 틀어막고 살아가지만, 무슬림이 아닌 우리는 최소한 그들의 주장이 과연 사실일까를 검증해 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면 공룡들이 정말로 살아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 영화를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진짜 공룡을 봤다”고 할 때, “정말 공룡이 살아 있구나.”라고 그냥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상작업을 통해서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진위를 검증하는 과학적 방법이 있다고 해도 비판을 금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에 감히 검증할 시도를 하지 않고 그대로 믿는다면 어리석음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제 인류는 이슬람의 세 기둥들에 대해서 확인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이미 비판적으로 연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와 꾸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체를 밝히겠지만 우선 “메카”의 허구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서 “메카”라는 도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메카”라는 도시 이름이 꾸란에 단 한 번만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알라께서야말로 너희들을 그들에게 승리하도록 하신 뒤에, 메카의 골짜기에서 너희들을 위하여 그들의 손을 억누르시며, 또 그들을 위하여 너희들의 손을 억누르시는 분이시다. 알라께서는 너희들의 소행을 여러 가지로 통찰하시는 분이시다(꾸란48:24 김용선역).

이 구절은, 무함마드 군대와 메카의 꾸라이시 족속이 주후 628년 서로간의 전쟁을 멈추고 10년간의 평화조약(후다이비아 조약)을 맺은 지 18개월 만에 무함마드가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메카를 공격하여 점령했을 때를 배경으로 하는데, 무조건 항복한 그들을 죽이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무슬림 학자들은 메카라는 이름이 거명된 유일한 꾸란 구절인 이 구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최영길 박사가 번역한 꾸란의 부록에 한글 색인에서 “메카”를 찾아보면 열 개 정도의 구절을 인용했는데 정작 이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인용된 구절들은 “이 도시”, “아브라함의 장소”, “안전한 도읍”, “최초의 집”, “축복받은 곳” 등이며 “메카”라는 이름은 없다. 실수로 빠뜨렸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꾸란에 “메카”가 거명된 유일한 구절이 빠졌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뺐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메카 대신에 바카(Baka)라는 도시 이름이 한 번 등장하는데 이를 최영길 번역 꾸란의 각주에 보면 메카의 옛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7세기에 이슬람이 발생하기 이전의 고대 중동의 무역 지도에 지금의 “메카” 자리에 “바카”라는 지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메카에 대한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가 메카에서 동쪽으로 20Km 거리에 있는 아라파트 산(자비의 산)에서 살았다고 한다(꾸란3:96 최영길역 각주 참조). 그리고 인류 최초의 예배 장소가 메카에 있는 카아바 신전이며(꾸란3:96),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메카에 있는 카아바 신전의 기초를 놓았다고 한다(꾸란2:127). 무슬림들은 아담 때부터 원래 있던 예배장소를 아브라함이 재건축의 기초를 놓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창세로부터 인류에게 지정된 최초의 예배장소이며 아브라함 때에도 사용하던 그 도시의 이름을 누가, 언제부터, 왜 바꾸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인류사의 최초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그 도시의 이름을 바꾸었다면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슬람학자들은 메카가 아라비아 무역의 중심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도 믿을만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메카라는 도시 이름이 역사상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칼리프 히샴(Hisham)의 통치 초기였던 주후 741년이라고 한다.(Jay Smith’s lecture: Apocalypse of Pseuido-Methodius Continuatio Byzantia Arabica, 2018.9.8.) 아랍 상인들의 무역 지도는 별자리를 근거로 만들어졌으며 정확하기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참고할 만한 어떤 지형지물도 없으며, 수시로 모래바람에 의해서 언덕이 생겼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에도 변치 않는 별자리를 읽을 수 없다면, 그리고 그 지도가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다면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무역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중동과 북아프리카 및 유럽의 무역지도에서 이슬람 역사에 등장하는 타이프, 야스립(메디나의 옛 이름), 카이바르(무함마드가 멸망시킨 유대인 마을) 등의 지명은 있었으나 “메카”는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메카라는 도시가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주후 900년이라고 한다(Patricia Crone, Meccan Trade and Rise of Islam: Gorgias Press 1987). 중동 무역 혹은 아라비아 무역의 중심지라고 주장하는 “메카”가 1세기부터 9세기까지 만들어진 모든 무역 지도에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또 한 가지 메카를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무슬림들의 ‘기도 방향’이다. 이를 아랍어로 끼블라(Qiblah)라고 한다. 주후 622년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무함마드는 유대인들을 이슬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메디나 최고 통치자로 등극하고 첫 해인 주후 624년부터는 자신을 선지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유대교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기도방향을 메카로 바꾸고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슬람 학자들은 “메카” 이외의 방향으로 드리는 기도는 알라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하니 무슬림들은 지금도 나침반을 휴대하면서 그 방향을 찾아 기도한다.(꾸란2:149)

그리고 모스크 건물을 지을 때도 기도방향인 메카를 향하여 지어야 한다. 그렇다면 주후 624년 이후에 지어진 모스크는 모두 메카 방향을 향하게 지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 역사 초기에 지어진 모스크들은 메카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

이슬람 학자들은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으나 Creswell, Fehervari 등의 학자들이 중동을 방문하여 이를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대를 이어 고고학을 연구하고 있는 Dan Gibson이라는 학자가 25년간 중동과 북아프리카 및 아시아 지역의 모스크들을 섭렵하여 2016년 “신성한 도시”(The Sacred City)라는 책을, 그리고 2017년에 “초기 이슬람의 기도방향”(Early Islamic Qiblas)라는 책을 썼다. 그의 연구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주후 629년에 인도에 건축한 체라만 사원(Cheraman Juma Masjid)은 메카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요르단의 페트라(Petra)를 향하고 있었다. 그 때는 아직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624년부터 기도방향이 메카로 정해졌다면 당연히 629년에 건축된 이 모스크도 메카 방향을 향하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 뿐 아니라 무함마드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637년에 세워진 시리아의 자미하마 대사원(Jami’ Hama al Kabir)이나 642년에 이집트에 세워진 푸스타트 사원(Fustat Mosque) 역시 페트라를 향하고 있었다. 699년에 요르단에 세워진 후메이나 사원(Humeina Mosque)이나 690년 이스라엘에 세운 바위 사원(Dome of Rock)이나 701년에 요르단에 세운 암만 사원(Amman Mosque) 역시 페트라를 향하고 있었다. 705년에 세운 예멘의 싸나 그랜드 모스크(Grand Mosque Saana) 역시 페트라를 향하고 있었다. 많은 고대 모스크들을 모두 거명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주후 706년까지는 끼블라(Qibla:기도방향)가 페트라로 통일되었으며, 그 후 170년 동안 지어진 모스크들의 끼블라는 페트라와 메카가 혼용되었고, 그 중간 방향을 택한 모스크들도 있었다고 한다. 주후 876년 이후에 지어진 모스크부터는 모두 메카로 통일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발견이라는 것인가? 건물의 방향은 한 번 지어졌으면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하므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생각해 보면 메카의 성지순례가 포함된 “이슬람의 다섯 기둥”(신앙고백, 기도, 금식, 자선, 성지순례)이라는 교리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624년에 끼블라 관련(반드시 메카의 하람 사원을 향하여 기도하라)의 꾸란이 후대의 작품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무슬림들이 그렇게도 사모하는 “메카”라는 도시가 후대에 만들어진 도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메카에서 살면서 최초의 성전인 카아바 신전을 세웠다면, 그리고 4천 년 전에 살았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메카에 카아바 신전을 재건하고 거기 살았다면, 그리고 그 도시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면, 메카는 인류 문명의 최초 발생지이며 많은 유적과 유물들과 삶의 흔적들이 그 안에서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는 역사와 유물과 유적들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 없다. 그리고 지구상 어떤 박물관이나 역사책에도 메카가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고 소개하는 내용은 없다. 사실은 모두가 이슬람 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꾸란으로 돌아가자는 원리주의 무슬림일수록 도서관, 조각품, 건축물 등 과거의 문명의 역사적 증거들을 파괴한다는 특징이 있다. 무슬림 학자들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꾸란의 말씀대로 우상들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도서관이나 책들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초기부터 도서관들을 파괴했다. 거짓으로 만든 종교의 참모습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해서 증거 인멸하는 것은 아닐까?

주후 642년 아므르 알 아스 장군이 이집트를 점령할 때 알렉산드리아에 장서가 70만권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발견했는데, 아라비아 사막에서 도서관을 본 일이 없는 장군은 그 당시 칼리프(무함마드를 계승하는 이슬람의 최고 통치자)였던 우마르에게 “이 책과 두루마리들을 모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우마르는 “그 책들이 꾸란과 상충되는 내용이면 없애버려라. 그리고 꾸란과 부합하는 내용이면 꾸란 만으로도 충분하니 보관할 필요가 없고 모두 불태워버려라”는 답변을 보냈다고 한다. 장군은 이 두루마리와 책들을 알렉산드리아의 여러 공중목욕탕에 나눠주어 모두 태워버리는데 6개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중동에 살 때 들었던 내용으로, 아랍 지역에서 공부한 학생은 역사 시간에 배워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데 지금은 인터넷을 찾아봐도 그런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았던 IS(Islamic State: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2014년 창립하여 모술을 점령하자마자 박물관부터 파괴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18억 무슬림들의 성지인 지금의 메카는 이슬람의 성지로 만족하지 않고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영국의 그리니치 표준시간(GMT)을 사용하는 현재의 세계 시간의 기준을 메카 표준시간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보다 더 높은 시계탑을 만들어 놓고 인류의 역사를 이슬람 역사로 바꾸려 하고 있다. 그 사막의 땅에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엄청난 긴 역사를 보유한 도시였다면 고층건물을 위해 모래땅을 깊이 팔 때마다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고고학자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을 만도 한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런 자랑스런 도시의 흔적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23개의 박물관이 있고 메카에도 박물관이 있지만 그 어디에도 이슬람 이전에 메카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은 없다.

전에는 인류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나누었었는데 지금은 무슬림들의 주장에 의해서 CE(Common Era)로 성공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지금도 학계에서는 연대를 표기할 때 BC 대신에 BCE를 사용하고 AD 대신에 CE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속이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의 거짓됨을 밝히고자 하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속을 수밖에 없다.

이제 무슬림을 만나 친구로 삼았다면 “초기 모스크의 끼블라(기도방향)는 왜 서로 다를까?, 또는 왜 인류 최초의 성소가 있는 도시라고 주장하는 메카에서 발굴된 이슬람 이전의 고대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없을까?” 등을 화제로 하여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만석 선교사(무슬림선교훈련원장)

* 위 글은 이만석 선교사가 14일 한국이란인교회(4him.or.kr) 홈페이지에 쓴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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