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故 옥한흠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한다. 순종을 얘기하면 마음 한쪽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구원 받는 것은 믿으면 되는 것이지 순종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삶이 결여된 것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는 하지만 그대로 살지 않고, 배우긴 하는데 순종에 관심이 없다. 순종하지 못하고 죄를 범해도 금방 용서받는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순종의 별로 관심이 없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치부이고, 복음의 영광을 가리는 주범이고,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는 것이다.
자녀를 낳을 때 부모가 자녀에게 요구하는 것 없이 다 책임을 진다. 어려움과 고통과 정성을 다 쏟아서 생명하나를 이 세상에 내 보낸다. 자녀가 일단 태어나 나의 자식이 되면 자라면서 분별력이 생기고, 나름대로 철이 들면 요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을 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때를 따라서 순종하지 않으면 매를 들고, 순종하므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실 때 요구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만세전에 다 계획하시고, 나 같은 것을 알아주셨고, 예수님이 오셔서 나 같은 것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믿도록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 고백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듭나고 하나님 앞에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것이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믿음 밖에 없다. 그 믿음도 어떤 면에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믿은 것이지, 내가 잘나서 믿은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것도 요구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예수 믿고,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순종하라고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경 말씀에서 가르쳐 주는 모든 하나님의 교훈의 순종하라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럼으로 순종이나 삶을 과소평가 하면서 신앙생활 하시는 분은 아직도 진리를 아는데 이르지 못한 유치한 자리에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스스로를 반성해 보라. 어떤가. 하나님의 앞에 순종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하루를 살고 있는가. 들은 것만큼 순종하려고 하는가. 배운 것만큼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갈증이 있는가. 정상이다. 그런데 듣고 다 잊어버린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 있는데, 이 말씀을 하시고 주님께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한 가지가 있다. 마태복음 7장 26절을 보면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핵심은 무엇인가.
가톨릭에서는 구원은 믿음 더하기 행함이라 가르친다. 그래서 행함이라는 것에 강조가 많고, 선한 일을 위해서 테레사 수녀처럼 한 평생을 거룩하게 성자처럼 사는 자들이 많다. 선행을 하는 것과 하나님 말씀의 순종하는 것이 꼭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공로를 세워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몸부림이 개신교보다 강하다. 그 이유가 교리에 있다. 구원 받기 위해서는 믿음만 가지고 안 된다. 행함이 더해 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보다 행함을 더 강조하다가 많은 이들이 잘못된 길로 갔다. 참 불행한 일이다. 여기서 반기를 든 것이 오늘날 개신교(기독교)이다. 믿음을 머리에 두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행함은 구원 없는 믿음의 열매이다. 이것이 정상이다. 구원 없는데 행함은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이 아무리 거룩하게 행해도 하나님 앞에 선이 될 수 없다. 검정색이 흰 것처럼 행동해도 검은색인 것이다. 구원을 얻으려면 믿음 밖에 조건이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은 꼭 행함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야고보서에는 ‘행함 없는 믿음을 죽은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다고 떠들어도 삶과 순종이 따라오지 못하면 엉터리이다. 엉터리 믿음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에베소서 2장 8, 10절에는 명료하게 이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설명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다. 왜 피조물이 되었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럼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병은 입으로만 주여 하면서 삶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 결과 국회의원 나왔다는 기독교인들이 재구실 못하고, 심지어 대통령, 장관이 된 사람도 재구실 못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한다. 그리고 교회를 지도하는 목사들도 강단에서는 설교를 잘하지만, 나가서는 말씀대로 살지 않는 모습들이 많으니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말씀의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슴속에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믿음은 엉터리가 되는 것이다. 머리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언젠가 비바람을 몰아치면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했다. 이유는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우리 모두가 듣고 배운 것만 실천해도 더 이상 성경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하고 가르친 것을 지키게 하라고 했다. 주님이 언제 믿음만을 강조하고 행함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고, 기독교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이런 인상을 주는 설교를 들었다면, 믿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지 행함을 과소평가하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어거스틴은 “예수 믿기 전(성령을 우리 마음에 두기 전) 우리는 죄 짓지 아니할 수 없는 자였다” 즉, 순종할 수가 없는 자였다는 것이다. 이제는 성령을 모시는 자로서 죄 짓지 않을 수 있는 자,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고,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 이런 갈증은 성령이 일으킨다. 그럼으로 영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만, 육에 있는 자는 절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신앙생활하면서 왜 기쁘지 않은가. 순종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배경에 양육을 받지만 왜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종이 따라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종하지 않고 가슴이 뜨겁다고 한다면 자기 혼자 들뜬 것이지, 성령의 감동이 아니다. 새벽기도를 갔다 와서 미움의 감정이 생긴다면 그것은 헛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지고,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주님의 뜻에 일치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주님께서 배부르게 하신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하시는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다. 창녀였던 여인을 구원하시고, 얼마나 주님이 마음이 기쁘셨는지 제자들이 점심을 먹으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의 양식은 나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 예수님의 배가 부른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공포와 싸우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결심을 하여 눈을 떴더니, 천사가 예수님께 새 힘을 공급했다. 주님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때에 따라 주님께서 새 힘을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 안엔 평안이 있었다. 왜? 하나님의 뜻의 일치하는 삶을 살기로 순종했기에 평안을 주신 것이다.
때를 따라 삶의 보람을 주시는 하나님,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며, 상황은 절대 평안하지 않지만, 내 마음은 마음껏 젖을 먹은 아이처럼 만족스럽고 평안한 것으로 배부르게 하신다. 순종하는 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순종하므로 이러한 은혜를 받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해야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도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구원 받는 것이 완성되는 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 지금도 점차 완성되어지고 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은 한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다. 좀 더 좁게 말하면 당신을 구원해서 자기 자녀 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꿈이다. 그럼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자나 깨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꿈꾸며, 오늘을 어떻게, 이 젊은 때를 어떻게, 남은 삶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한다. 마 6:33을 인용해, 세상 사람들은 눈 만 뜨면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지가 최우선이다. ‘먹었냐’가 옛날에는 인사였다. 굶는 것만큼 큰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는 먹을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식당 문화가 번성한 나라가 없다. 식당이 너무 많다. 몇 천만짜리 녹용을 먹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잘 먹고,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다. 주님도 인정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앞세우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앞 세워야 하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 보다, 고통을 당해도, 심지어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앞 세워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먹고 마시는 것 또한 채워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부름 받은 존재들이다. 따라서 내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성공하든 실패하든, 청년이든 노년이든, 여자든 남자든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완성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안 믿는 자들을 전도해야 되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해 내게 있는 것을 기꺼이 주님께 드리며, 이런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는 것이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우리가 어떻게 성공 했는가.로 판단하지 않고, 우리가 평소에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았는지로 판단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는 것이 꿈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칭찬하실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삶의 축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임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이것은 변동이 없다. 이것을 축으로 놓고, 우리의 생활이 항상 회전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사는 자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한다.
우리의 가슴에 꿈과 최우선 순위는 무엇인가. 세상의 소망은 있는가. 우리가 이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자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넘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예수 믿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아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지금 저질 선거판을 보라. 세금 떼먹고 사는 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수입을 놓고 보면 비교도 안 될 만큼 고 수입을 가지고 세금 떼먹고 뻔뻔스럽게 산다. 그러고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잘 사는 집안은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지, 심지어 군대를 안 간다. 이해할 수 없는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의식 자체가 너무 뒤쳐진다. 인간 성격이 파괴되고, 주님의 재림의 날이 다가오는 가운데 우리의 인간사의 꿈,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전도사역 왜 하는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전도해야 되고, 좋은 이웃되기 위해 캠페인을 하는 것이다. 한 가정을 구원하자. 이런 꿈을 가지고 산다면 우리 이웃에 하나님의 나라가 날마다 임하지 않겠는가. 우리교회 부흥을 위해서가 목적이 아니다. 다른 교회도 부흥시키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 삶의 자세이다.
우리의 삶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놓고 갈증하고 배고파하는가. 무엇을 놓고 꿈을 꾸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꿈을 주시고, 목적을 주시며, 갈증과 배고픔을 주셔서 우리의 삶 전부가 그것을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축복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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