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설교는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가 지난 20일 서울대학교 기독동문회 신년 감사예배에서 한 것이다.
시편 139:14, 17, 18 딤모데전서 1:12~17
죄와 허물밖에 없는 부족한 제가 손정현 부회장과 여러분들의 부르심을 받고 1년 6개월 전인 2018년 7월 7 일 오전 7시 세종호텔에서 모인 기도모임에 와서 "신앙오도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0년 1월 20일 오전 7시 30분 여러분들의 부르심을 다시 받고 여기 포레힐호텔에서 모인 신년 감사예배에 와서 "나의 감사" 라는 제목으로 저의 삶에 대한 간증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은 처절한 회개의 고백과 함께 진솔한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 139:14, 17, 18).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은 처절한 회개의 고백과 함께 진솔한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1-25).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딤전 1:12-17). 제가 매일 암송하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부족한 죄인인 저의 삶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감사의 고백을 하기 전에 먼저 저의 처절한 회개의 고백을 한 마디 합니다. 저의 한 평생의 삶을 돌아볼 때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이고 게으르고 나태한 죄인중의 죄인인 것을 날마다 자면서도 깨어서도 기도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도 설교를 하면서도 고백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죄를 올바로 깨닫게 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위해서 기도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과 한국교회의 예레미아 김치선 목사님과 만인의 존경을 받으신 한경직 목사님과 기도와 말씀의 사람 박윤선 목사님들이십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저의 감사의 조목들을 간단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첫째로 부족한 제가 주일성수를 바로 하고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11살 때인 1948년 8월 사랑하는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의 사랑과 눈물의 허락을 받고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 남쪽으로 온 다음 고아와 나그네로 외로움과 슬픔과 아픔으로 지니고 한 평생을 살게 되었는데 부족한 저를 너무 많이 축복해주셔서 부족함이 없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회개와 은혜사모와 섬김의 신앙생활을 마음껏 하게 되었고 그리고 남들이 가기를 소원하는 서울 중학교와 서울 고등학교와 서울 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음껏 한 다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이곳 저곳의 좋은 학교들에서 마음껏 공부하면서 신학사, 신학석사, 신학석사,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박사 후 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도 마음껏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갈 때는 돈이 없어서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갔고 단 돈 100불을 주머니에 가지고 가서 12년 동안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생활을 통해서 저의 지정의와 삶의 시야를 넓히게 되었고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폭을 조금씩 넓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부족한 제가 12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 마자 조동진 목사님께서 사역하시는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영안교회에서 1년 동안 강변교회를 게척해서 28년 동안 목회 사역을 마음껏 하게 되었고, 총회신학교와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교에서 교수 사역을 마음껏 하게 되었고, 조동진 목사님과 함께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선교 사역에 마음껏 종사하게 되었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불우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섬김의 사역을 마음껏 계속하게 되었는데,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는 가뭄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북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를 찾아가서 우물 열 몇 개를 파주면서 모슬렘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안과 진료소를 세워주며 모슬렘 사람들과 힌두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극심한 가난과 재난으로 고통을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무라취드에 가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하나 건축해 주며 모슬렘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중국 연변지역에서 가난과 고난 속에서 불우하게 살아가는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 150여명을 지난 20여년 동안 계속해서 도와주었고, 북한의 불우한 사람들과 결핵환자들을 돕는 일을 지난 25년 동안 계속하게 되었는데, 모두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도우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부족한 제가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야와 안목과 마음 가짐을 점점 넓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뛰어 넘어 남쪽으로 온 다음 오랫동안 반일 반북 반공 반중 반 모슬렘 반 타종교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는 일본통치시대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가서 감옥생활을 하셨고 공산통치시대에는 공산주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가서 감옥생활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순교를 당하셨기 때문에 저는 자연히 반일 반북 반공적인 입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남한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미국에 가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지니면서 반 복음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고 자유주의적인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차츰 저의 입장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점점 포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영향과 예일대학교의 펠리칸 교수님의 영향과 영국의 존 스토트 박사님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존 스토트 박사님의 강의를 직접 여러 번 들으면서 균형과 약함과 섬김의 귀중성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분이 자주 강조하시던 "Dynamic unity holding both extremes" 즉 "양극을 붙잡는 역동적인 통일성" 이란 말은 저에게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장 귀중한 성경의 가르침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2013년 3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화해와 평화와 통일" 또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또는 강의를 36번이나 했는데 그 설교의 첫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입니다.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이시지만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하나되는 아름다운 모습과 자연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전에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 찌어다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찌어다"(시 148:3, 9, 10, 13).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서로서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십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날마다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기를 소원합니다.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혹시 제가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을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순교자들이 흘린 피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을 화해의 도구들로, 평화의 도구들로, 통일의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에게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면서 살 수 있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푸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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