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이 구원 이라는 단어에 민감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구원 받아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원이란 단어가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왜 내가 심판을 받게 되느냐고 항변 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그 피 값으로 죄 사함 받은 것이 은혜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누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얼마에 샀는지를 물어 보고 그 값을 지불하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한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선물 받는 사람은 값없이 받으나 선물을 준비한 사람은 대가를 치른다.
만약 나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잊지 말자. 미국에서 오랫동안 라디오 방송 선교를 해왔던 버논 맥기 박사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싼타 모니카 부두에서 25마일 떨어져 있는 카타리나성 까지 뛰어 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이 본문을 설명 하였다.
지금까지 아무도 뛰어 넘어 온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카타리나 섬까지는 뛰어 넘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내용을 본문에서 설명 한다.
본문 10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하신다. 세상에서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이 기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롬3:23) 천국에 들어 갈 수 없고 구원에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우리가 인간의 방법으로 천국에 가려 한다면 자격이 턱없이 부족하고 불가능 하다 .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리가 되어 주셨다.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 하네
구속 못할 할 죄인을
주님이 구속 하셨네.
1, 죄의 심각성
그리스도가 구속자시라고 믿는자들 조차도 삶의 활력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기본적인 진리를 명학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활력 있는 삶을 위해 책자도 읽어보고 여러 집회나 기도원에도 가고 무엇인가를 탐구 하려고 상당히 분주하게 노력해 보지만 허무함은 가시지 않고.
그의 영혼은 상실 되어 있는 채 마음은 여전히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참으로 불쌍한 자라 하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진리에 대하여 혼란시키는 사단의 역사는 옛날부터 있어 온 문제이다.
그것이 신약에 나타난 바리새인의 모습 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회칠한 무덤 과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본문에서 역설 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만이 참된 의에 이르게 되어 진다고 강조 한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의 ‘를 현대 사람들은 왜 믿지 않으려 하는가.?
그 이유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다는 그릇된 의‘의 개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2, 값없이 주시는 은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에서 해답을 찾게 된다. 이것이 해결의 유일한 열쇠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값이 없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믿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갑을 지불한 것은 잘 믿는다. 그러나 보상은 보험에 불과하다.
우리가 값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 값을 지불한 것에는 믿음이 필요 치 않다. 부모가 사준 물건을 받고 자녀들은 좋아 하지만, 부모는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손해 보는 일을 한 것이다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무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셨다. 그렇게 하여 나를 살리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 에게는 값없이 은혜가 주어 졌지만 누군가가 값을 지불 되었다.
누군가가 값을 지불하였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값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로부터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인정받았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믿음의 활력을 얻게 되어 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처절하게 말씀 하신다.
바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축복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제사를 가르쳐 주셨다. 레위기에 보면 제물을 바치는 끔찍한 제사 의식이 나온다.
예물을 바치는 자는 제물로 양이나 황소를 바치기 위해서 제물을 죽이고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린다. 그런데 짐승을 죽이는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상상해 보자.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실까? 우리가 죄 가운데 있고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 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구원의 은혜의 깊이는 더해 갈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외면하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즐기게 된다.
죄는 한마디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니 양심은 파선한 배와 같아서 인생을 표류하다 침몰 직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야 죄를 해결해 주시는 구원자 예수를 의지하고 삶의 활력을 누리게 되어 질 것이다.
3,죄의 해결 방법
앞에서 지적한 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는데.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 준다고 설명 한다. 그러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 에게는 율법이 이방인 에게는 양심이 질병의 진단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진단서가 아무리 신뢰 할만 해도 병을 고치지는 못한다.
죄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복음이라는 약과 예수님 이라는 의사가 필요하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친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런데도 내가 친 백성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 죄 사함의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소금과 같이 짠 맛을 내고 성령 충만하며 죄 사함함의 감격을 간직하고 .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살아 갈 때 우리는 가정을 변화 시키고 민족을 변하 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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