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기고] 우리는 우리의 심각한 현실을 알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미 고령화되고 노화되었다. 간혹 시간이 되면 이런 질문을 한번 해 보자.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평균연령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고 나이를 물어볼 수는 없지만, 그런 예배에 비교적 자주 보이는 평신도의 평균 연령을 짐작해 보면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50대 중반을 넘어선 것 같다.
한때 ‘한국교회를 깨운다’던 평신도들이 주축을 이루던 30대 40대들이 차지했던 80년대의 이야기가 이미 전설이 됐다. 젊은 인구가 대량으로 유입되지 않으니 평균 연령은 지속적으로 치솟는다. 젊은 층의 유입은 간헐적이고 단기적이고, 이슈나 의미 등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다음세대 청년의 현주소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왜 교회에서 청년들이 사라지는지,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교회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그 고민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하여 청년들이 장년이 될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수많은 변곡점을 지나왔다.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고 IMF, 세계금융위기 등을 지나오면서 생활양식, 노동 환경 등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시대에 따라 그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의 관심사와 고민도 변했다.
교회 역시 시대의 징표에 따라 그 기능과 역할을 바꿔오면서 청년들과 함께 했다.
2018년 오늘, 이 시대 교회의 ‘청년’ 키워드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다음세대 청년의 현주소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왜 교회에서 청년들이 사라지는지,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교회는 청년들에게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그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2018년 신한은행의 ‘보통사람 금융생활보고서’에 따르면, 취업문이 좁아진 탓에 청년들은 평균 1.4년 동안 준비 기간을 가지고 26.2세에 첫 취업을 한다. 취업 준비 기간에는 생활비와 스펙쌓기 비용 등으로 평균 468만원을 쓰는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60.2%) 가족에게 손을 벌린다.(66.3%, 복수응답) 그나마도 2006년 이전에는 10명 중 8명 이상이 첫 취업에서 정규직 자리로 갈 수 있었지만 최근 정규직 비중은 60.5%에 불과하다.
그래서 학업 기간이 늘어나고 취업이 늦어지면서 결혼과 출산도 늦어지고 있다. 통계청에서 밝힌 ‘2017 혼인과 이혼통계’를 보면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2.9세, 여자 30.2세로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1988년 평균 초혼연령이 남자 27세, 여자 24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6세 가까이 높아졌다. 나이별 혼인 추이를 보면 남녀 모두 20대 이하의 혼인은 감소하지만 30대 이상 혼인 건수는 지속해서 증가해 30대 초반(37.1%), 20대 후반(21.6%), 30대 후반(18.2%) 순으로 나타난다.
치열한 경쟁과 생존으로 내모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에게 신앙생활은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연구원 ‘2017 서울사회학’ 조사에 따르면 젊은층(20~39세)의 유종교율 추이는 2007년 47.3%에서 2017년 42.8%로 10년간 4.5%포인트 줄었다. 보고서는 경제적 영향을 받아 종교 활동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경제·시간적 빈곤층’이 종교 활동에 진입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장에서 젊은이들을 만나보면 현재 자신의 신앙생활 유지에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대부분 학교나 직장 등에서 일로 인한 ‘시간과 여유 부족’을 꼽는다. 젊은이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면, 학업, 가족, 취업, 건강을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종교는 소수에 불과했다.
‘피곤한 일요일, 교회에 가면 밥 먹여주나요?’라고 묻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 각박한 사회생활 속에서 정신적, 심리적 위안을 찾아 헤매는 이들을 교회로 불러오기 위해 교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는 이런 일에 충분하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늙은 교회는 젊은이들을 품지 못하고, 다음 세대는 교회 밖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형국이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보수는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진보도 이미 전통의 일부가 되었으며 기성세력의 한 축을 담당한다. 어느새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도 신선한 시도, 과감한 도전, 날선 비판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과거에 쌓은 투쟁경력, 의식화된 이념, 촛불정신으로 이어지는 시민정신 등이 중요시된다. 이런 가치들이 중요해지는 현상을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또 다시 ‘보수화’ 또는 ‘기득권화’되는 과정이라는 단어가 잘 맞지 않을까? 이 사회의 진보도 이미 정치화, 보수화되었다.
얼마전 올해 국제도서전이 코엑스에서 열렸다.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인파와 강연속에 많은 출판사, 서점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기독교 부스쪽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편이었다.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서적이 관심도 없고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팔리지 않는 현상은 미래를 보는 젊은 논객이나 젊은 글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마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고 새로운 방식의 효과는 무엇보다 교회가 계속해서 젊음을 유지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새로움을 주지 못한다. 그 새로움을 담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 새로운 시각, 새로운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시대를 가르는 논객이 없다. 한국교회를 대변할 논객을 길러야 한다.
더 나아가 그중의 하나가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평신도 전문사역자 양성이다. 평신도들 사이에는 미래의 전문가를 준비하는 20대와 30대 젊은이들은 상당히 많다. 또한 전국의 신대원생 가운데 상당수가 여기 해당할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이들은 마음속으로 신앙을 키우며 묵묵히 공부하는 미래의 일꾼들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전문 지식이 교회를 위해서도 사용되었으면 하는 아름다운 꿈을 품고 있다. 더욱 전문화된 사회가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주류 종교로서 복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 미래교회는 이들의 전문성과 열정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교회와 어떤 ‘전문적 연결고리’를 원한다.
청소년들이 교회로 유입되지 않는 현실에서 교회안의 청소년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나가야 한다. 그곳이 학교이자, 캠퍼스이다. 가령 예를 들어 학교와 교회를 이어줄 수 있는 청소년 적성, 진로상담사를 교회의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서 키워내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이다.
또한 실제 인격적으로도 다.준.사(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사역자들)과 청.멘.넷(청소년들의 멘토링과 네트워크)을 전국적으로 유지하고 인격적으로 교류하게 하므로 다음세대 부흥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설동주 목사(과천교회)의 ‘쉐마교육’과 서길원 목사(상계교회)의 청소년 연합사역은 다음세대의 대안으로 한국교회를 주목하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와 교회에서 가능한 역할을 고민하고 나눌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미래 교회의 주역들, 미래의 다양한 평신도 사역자들의 발굴은 무더운 여름 이렇게 사역현장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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