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한국교회 석학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가 퀴어신학을 비판하는 세 번째 기고글을 통해 "퀴어신학은 동성애를 가증한 일로 정죄하는 성경 가르침을 거부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한 박사는 기고글을 통해 "성경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초월해 모든 종족과 문화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인간 삶과 윤리의 기준"이라 말하고,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동성애 이야기와 레위기의 동성애 금기 명령 해석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이성애가 바른 성(性) 질서이고, 동성애는 성중독으로 이성애의 변태(變態)"라 주장했다.
특별히 김 박사는 "동성애 행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행위로 간주된다"고 지적하고, "동성애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성 중독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면서 "그럴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귀하게 되고 성결되며 사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영한 박사의 기고글 전문이다.
머리말
기독교 신앙을 가졌는 데도 정통신학자들과 퀴어 신학자들의 동성애 관점이 왜 다른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에 대한 대답이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같다 하지만 하나님 신앙과 세계관의 기본이 되는 성경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성경을 단지 문화적 산물로 보면서 문화적 해석에 띠라서 동성애를 시대적 문화적 방식으로 보면서 성경은 이를 거부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정통 신학자들은 성경을 단지 문화적 산물 이상으로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의 말씀으로 진지하게 받으므로 "동성애는 가증하다"는 성경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동성애 이슈는 단지 개인이나 교단의 신앙적 취향의 문제를 너머서서 그리스도 교회가 그 거룩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이 시대의 성(性) 해방의 물결에 휘말려 정체성을 상실하느냐 하는 교회의 순결성과 신자의 거룩성을 지키는 문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이슈라고 본다.
1. 성경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초월해 모든 종족과 문화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인간 삶과 윤리의 기준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성경은 역사적으로 오류가 있는 책으로 보고 인간의 편견과 오류가 뒤섞여 있는 책으로 본다. 다음 문장은 성경에 대한 퀴어신학자의 견해이다: "성서는 인간과 인간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담은 책이지만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불완전한 생각과 지식을 통해 알려지고 표현되고 기록되었다. 시대와 지역의 종교 문화적 제약과 한계 속에서 성서의 저자들은 성서를 썼다. 따라서 성서에는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편견과 오류가 뒤섞여 있다. 우리는 성서에서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와 시대의 제약 속에 있는 인간의 편견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편견을 구별하지 못하면 자유롭고 책임적인 신앙인이 될 수 없다."
퀴어 신학은 위의 문장에서 보는 것처럼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문화적 편견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동성애에 대한 비난하고 정죄하는 구절은 그 시대와 지역의 종교문화적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절들은 2-3천년 전 그 시대와 지역의 종교문화적 편견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 정통신학자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성경관은 자유주의적 성경관으로서 성경을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종교문화적 편견을 벗어난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역사적 정통적 기독교의 성경관과는 다르다.
정통 개혁신학의 견해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요 동시에 인간의 말씀이며, 비록 문화적 옷(고대 히브리어와 중동 아시아의 문화)을 입고 있으나 그 말씀이 담고 있는 윤리적 규범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 구체적인 예로 모세 시대에 주어진 십계명은 오늘날에도 타당하다. 다른 신 경배 금기, 우상 숭배 금기, 하나님 이름 훼손 금기, 안식일 지킴, 부모 공경, 살인 금기, 간음 금기, 도둑질 금기, 거짓증거 금기, 탐욕 금기 등은 오늘날 그대로 타당한 것이다. 구약시대의 의식법(정결례) 등은 문화적인 것으로 오늘날에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적용되지 않으나 그 영적 의미는 오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그림자로서 지시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도 타당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정통 개혁교회는 성경에 인간의 시대적 편견과 오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비록 2-3천 년 전 성경의 저자들, 모세나 선지자들이 율법서와 예언서를 썼다 할지라고 비록 그 시대의 언어를 사용했으나 성경의 교훈은 시대적 문화의 제약과 한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준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십계명을 오늘도 청교도 순례자의 전통을 이어가는 미국의 남부 주에서는 그대로 지키고자 그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후예인 역사적 개혁교회는 2-3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십계명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예배시간에 읽고 지키기를 다짐하고 있다. 로마서 9장 17절의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라는 구절이나 갈라디아서 3장 8절 "성경이 미리 알고 아브라함에게.." 등을 보면 성경이 의인화(擬人化)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자 그분의 권위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만이 최고, 최선, 최종의 권위를 지닌다.
2.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동성애 이야기 해석
퀴어 신학은 "동성애 비난과 정죄란 2-3천 년 전 고대사회의 종교문화적 편견과 오류에 입각하고 있다"고 다음같이 주장한다: "성서에는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이런 구절들은 고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편견과 오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성서구절들을 내세워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2~3 천 년 전 고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편견과 오류를 21세기 인간과 사회에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롭고 성숙하고 책임적인 기독교 신앙인이 되려면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성서의 구절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성서구절에 매이고 집착하는 것은 현대인의 상식과 교양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퀴어 신학의 해석은 성경 본문에서 벗어나는 젠더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소돔 사람들의 행동은 동성애가 아니라 불친절의 죄라고 다음같이 왜곡한다: "소돔 이야기에 대한 현대 해석자들은 소돔 사람들의 동성애적인 동기가 있다고 잘못 해석하였다. 롯의 손님들이 소돔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돔 사람들은 성적인 요구를 만족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손님들을 향한 우월성과 힘이 있음을 보여 주려는 의도를 가졌다. 그렇기에 롯의 딸들은 이러한 욕구의 대체자가 될 수 없었다. 이야기의 초점은 손님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지, 동성애를 행하려는 것이 아니었다."(M. Nissines, Homoeroticism in the Biblical World: A Historical Perspective, tr. by K. Stjerna,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8, 49)
그러나 정통 개혁교회는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동성애 기사(記事)는 동성애 사건을 보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는 구절은 소돔 사람의 동성애 행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이끌어 내라...상관하리라"는 말은 친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롯이 그들에게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창 19:7).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창 19:8b)고 간청하는데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롯은 이들의 악행을 막기 위하여 자기의 딸들을 내어주겠다(창 19:8a)고 타협하고자 한다. 8절에 롯의 두 딸이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야다"(Yadah)는 구약에서 948회 사용되었는데, 창세기에서 사용된 12회 가운데 10회가 성교를 뜻하는 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본문에서는 성교(性交, sexual intercourse)를 뜻하는 용어로 해석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롯은 소돔 고모라 불량배들의 동성애적 폭력을 완화하기 위하여 이성애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본문은 소돔 고모라 불량배들이 동성끼리 성적으로 결합하는 동성애를 너머서서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일방적인 성폭행을 행함으로써 피해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하는 행위를 보여준다.(R. A. J. Gagnon, 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 Texts and Hermeneutics (Nashville: Abingdon Press, 2001), 73) 본문은 불량배의 이러한 동성애 행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런 범죄인 것을 고발해주고 있다.
퀴어 신학자들은 에스겔이 16장 49-50절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은" 한 가지 죄악 때문에 멸망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의 구조를 보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은 죄" 다음에 접속사 "그리고"가 나온 다음에 또 한 가지 죄인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열거하고 있다. 레위기18장22절에 의하면 동성 간 성교는 가증하다(תועבה, 토예바)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단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은 죄 때문만은 아니라 동성애라는 가증한 죄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 유다서 7절은 소돔과 고모라가 "다른 색"(σαρκὸς έτέρας, other flesh)을 따라 가다가 멸망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다른 색(色)"(other flesh)이란 동성애를 말한다.
사사기에 기록된 불량배들의 동성애 기사: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사 19:22)는 동성애 행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런 범죄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동성애는 천부적인 남녀 간의 이성애 성(性) 질서를 전복시키기 때문에 정상인(이성애자)인 성 다수자들에 의하여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비난은 '도적질'에 대한 윤리적 평가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창조 질서로서 주어진 성적 질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타당하다. 남녀 간의 이성애가 바른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존속시키는 올바른 성 질서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서 현세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3. 레위기의 동성애 금기 명령 해석
이러한 창세기의 동성애 금기 명령은 레위기의 동성애 금기 명령과 일치한다. 레위기 18장 22절: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그리고 레위기 20장 13절: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은 둘 다 명료히 동성애 금기 명령을 말해주고 있다. "가증하다"(תועבה, 토예바)라는 표현은 성적인 죄들이 가증하다는 것을 가르킨다(레 18:26-27, 29-30). 동성애 금기사항에 대하여 "가증하다"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레 18:20; 레 20:13)은 주목할 만하다.
퀴어 신학자 보스웰(J. Boswell)은 가증하다는 용어가 강간이나 도둑질 같은 윤리적인 악이 아니라 돼지 고기를 먹거나 월경 같이 제의적인 부정(不淨)으로 해석한다. 퀴어 신학자 버드(P. A. Bird)도 "가증하다"는 용어는 윤리적 용어가 아니라 제의적 용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견해는 정통신학자 배정훈이 다음같이 반박하는 바 같이 성결법전에서 나오는 제의적인 부정과 인간의 윤리적인 범죄를 혼동하고 있다.
레위기 1장 -16장(제사법전)과 17장 -26장(성결법전)이 언급하는 부정(不淨)은 제의적인 부정(不淨)이다. 예컨데, 부정(不淨)한 짐승을 먹거나, 산모가 아이를 낳거나, 유출병으로 인해 부정(不淨)하게 되는 일은 인간의 책임져야할 윤리적(倫理的)인 부정(不淨)이 아니라 목욕이나 제사를 통하여 정(淨)하게 회복되는 제의적(祭儀的) 부정이다. 이에 반해서 레위기 18장과 20장에서 가증하다고 금기하는 윤리적인 부정(不淨)에 해당하는 죄는 제의적인 부정이 아니라 "죽일지니라"라는 표현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대가(代價)로 바쳐야 하는 죄다. 동성애는 살인처럼 가증한 것으로 백성들이 더럽혀지고, 그로 인하여 땅이 더러워지고, 나아가 땅이 거민을 토해내는 형벌로 이어지는 죄다(레 18:24-30; 20:22-27). 동성애는 목욕이나 제사를 통하여 씻어 낼 수 있는 제의적 부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로서의 성 질서에 대한 위반으로서 가증스러운 윤리적인 부정이요 죄된 행위다.
4. 이성애가 바른 성(性) 질서이고, 동성애는 성중독으로 이성애의 변태(變態)다.
수천 년 전 소돔과 고모라 주민의 동성애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런 죄악이라면 오늘날에도 그것은 가증스런 죄가 된다. 하나님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계시는 인격적 거룩한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레위기, 사사기에 나타난 동성애 판단은 결단코 고대사회의 종교 문화적 편견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자이신 하나님의 판단이시기 때문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이러한 구약 성경 구절이 "현대인의 상식과 교양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고 "오늘날 21세기에서 자유롭고 성숙하고 책임 있는 신앙인은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구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인간중심주의적 세속주의 관점에서 왜곡하는 것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동성애를 창조 질서라고 다음같이 왜곡한다: "성서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음을 말해준다. 동성애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위 문장에서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창조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 증언을 왜곡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거룩하게 이성애자로 창조하셨지 동성애자로 창조하시지 아니하셨다. 창세기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을 가정과 번식의 원리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14). 동성애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 아니고 타락한 인간에 의한 창조 질서의 왜곡이다. 창조 질서로서 주어진 이성애의 변태다. 하나님은 인간을 동성애자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성애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의 배필로 여자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이 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도우도록 다른 동성(同性)존재 아담을 짓지 아니하시고 이성(異性)존재 하와(여성)을 지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 2:22). 이는 최초의 남녀로서 하나의 짝을 이루어 인류가 저들이 이룬 결혼에서 번식하도록 하신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간의 원죄 타락 이후에 6장에 성적 타락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2-3). 인간의 성적 타락은 이성애 타락을 너머서 동성애 타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창세기 6장에 언급된 이성애 타락은 부부 아닌 남녀 다자(多者) 간의 성적 결합(polyamory)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인간은 성적 타락으로 인하여 영성을 상실하고 육체(basar, flesh)가 되어 버렸다. 동성애 타락은 창세기의 소돔 고모라 주민의 동성애 악(창 19:5)에서부터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로마시대 사람들의 동성애를 다음같이 정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순리(順理)란 자연(the nature)에 따른 성의 사용(the natural use of the sex)을 말하는 것이다. 순리란 이성(異性) 간의 성적 결합을 말하며, 역리(逆理)란 동성(同性) 간의 성적 결합을 말하고 있다. 이는 자연에 거슬리는(against the nature) 성의 사용이다. 이러한 역리적 사용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부끄러운 일"(the shamefulness)이라고 말하고 이에 대한 상당한 보응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동성애 행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행위로 간주된다. 동성애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성 중독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귀하게 되고 성결되며 사랑받을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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