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참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학사경고를 받고 휴학을 결정한 K와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적성이 맞지 않니? 무엇을 하고 싶으니?’ 전공을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물었던 질문에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지금 배우는 학과가 적성에 맞습니다. 다만, 강의마다 일방적으로,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을 무조건 암기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사실, 뜻밖의 대답도 아니다. 수십 년 전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대학교 아니 신학교에서도 항상 그랬었기 때문이다. 일방적 가르침, 암기, 그리고 시험, 시험, 시험. 놀라운 것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치처럼, 교육도 전혀 바뀌지 않는 채 그대로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기야, 국민을 ‘개, 돼지’처럼 생각하고 교육을 무슨 축산업처럼 생각하는 공직자들이 교육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처지에, 아예 교육부를 농수산부에 병합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K군은 심각했다. ‘왜 공부가 힘들었니?’라는 질문에, ‘내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 나는 나 자신이 대한민국 교육을 어떻게 ‘견뎌왔는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이 땅의 교육을 견디며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약간 비참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K군에게 들려주었다.
결국, 병행할 수밖에 없다. 학교 공부와 자기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공부를 중심으로 학교 공부의 비중을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과목은 집중하고, 내 관심이 아니거나 ‘의미 없는’ 과목들에는 힘을 빼는 것이다. 전부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나는 교육 이론이나 정책을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학사경고로 몰리는 K군 같은 학생이, 이런 조건에서라도 어떻게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다.
원래 ‘암기교육’은 지식을 이해시키고 활용하게 하는 교육에 있어서 초보적인 단계에 속한다. 구구단이나 간단한 수학공식처럼, 초등, 중등 교육 정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정말 중요한 개념들은 스스로 탐구하면서 습득해 갈 수 있다. 요즘처럼 정보가 널려 있는 시대에, 아직도 암기를 주로 하는 고등교육은 전혀 걸맞지 않다.
K군은 자신이 배우는 것을 ‘자신과 연관시키고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을 서로 연결하고 통합하고 싶어’ 했다. 단지 매 수업마다 그럴 기회와 공간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 그를 좌절시키고 결국 학사경고로 이어진 것이다. 실로, 교육 참사다.
왜냐하면,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질문과 여러 흩어진 지식을 자기 안에서 통합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그야말로 공부를 잘 해 낼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을 가진 학생이 학사경고를 받았으니, 참사다.
어떻게 할까? 나는 K군에게, ‘스스로 가르치라’고 말했다. 자기 공부를 시작하라고. 자신의 질문이 무엇이냐고. 지금 가장 궁금한 질문이 무엇이냐고. K군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도 주저 없이 책장으로 걸어가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을 K군에게 주었다.
읽어보라. 단지 읽지만 말고,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듣고 그와 대화하라고. 물어보고 답을 들어보고, 동의하지 않으면 근거와 논리를 찾아보고 그것을 써보라고. 그리고 그 책과의 대화가 끝나면, 다시 오라고. 사실, 이런 것이 ‘도제(徒弟)수업’의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학생의 관심분야를 스스로 깨닫게 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하며 성장하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다.
K와 함께 기도한 후, 그를 보내면서 말했다. ‘너는 이제 너 자신이 교사가 되어 너를 가르치는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공부란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든, 평생 할 수 있다. 입학을 축하한다.’ 웃음을 지으며 떠나는 K를 보며,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의 배우는 길에 기쁨도 가득하기를 빌었다.
‘자기 공부’를 하라. 우리는 다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 빛이 들어오면 모두 찬란하게 자신의 색을 비추어 내야 하다. 그래야 ‘함께 더욱’ 아름답다. 개인을 말살하는 교육, 개인을 땅에 묻는 교육, 하나님의 형상으로 독특하고 고유하게 아름답게 지어진 개인들을, 벽돌 찍듯 똑같은 공산품으로 만드는 이런 교육이 비기독교적이고 반성경적인 것임을 더욱 절감한다.
결국,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을 선생님 삼아, 스스로 배워나가야 한다. 성경은 물론이고, 먼저 고민하고 답을 찾은 많은 훌륭한 저자들을 만나고, 주변에 선생들을 찾아 자신의 질문과 관심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확장시키고 통합시키면서 성장하면, 나중에는 주변의 그 무엇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을 만큼, 능한 ‘학생’이 될 것이다.
몇 개월 후에, 다시 K를 만나기로 했다. 기대하며 기도한다. 목자요 교사이신 주께서 내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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