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文]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옛날 남쪽 유대 나라와 북쪽 이스라엘 나라로 나뉘어졌을 때, 북쪽 이스라엘 나라 최악의 왕 아합이 이방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왕후로 맞았다. 이세벨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를 폐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많이 죽였고, 바알 우상을 국교로 만들려고 이방에서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을 끌고 들어와 궁궐에서부터 전국 각처에 바알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강압적으로 우상을 섬기게 강요하였다. 아합은 그것을 묵인 동조하였고 국민은 두려워 우상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국가멸망의 위기가 왔다. 그런데 당시 감히 아합과 이세벨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이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선지자로 세우셨다, 엘리야가 왕 앞에 서서 왕의 죄악을 책망하고 "하나님께서 벌로 비가 내리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 경고하였다.
3년 6개월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이세벨이 항복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과감한 제안으로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대결하여 여호와가 참 신임을 보여주고 바알 아세라 선지들을 모두 죽여 그들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비가 내릴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여 오랜 가뭄이 그치고 비가 내리게 되었다.
머뭇거리던 백성들이 "여호와가 참 신이다"라고 환호하였다. 엘리야야말로 초인간적 인상을 주면서 승리감에 흥분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세벨이 당연히 항복할 것으로 짐작했는데 도리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통고해왔다. 엘리야는 겁이 나서 호렙산까지 도망을 가서 하나님께 '나만 홀로 남았는데 죽여 달라'고 부르짖었다.
오늘의 以北은 옛날 악왕 아합 시대 이상으로 완전히 하나님을 떠난 인간우상숭배의 나라가 되어있다.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순교하였고 현재는 한사람도 허용하지 않고 누구도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완전금지를 시켰다. 복음 전하려 들어가면 종신형을 내린다. 점점 더 강팍할 뿐이다. 지금 이북에는 '나만 홀로 남았다'고 말하는 신자조차 없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나만 홀로 남았다'는 말을 세 번이나 하였다(왕상 18:22, 19:10, 19:14).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이북 상황을 보며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① 엘리야는 선지자들이 멸절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절망에서 부르짖는 말
② '나만 홀로 남았는데' 왜 하나님께서 바알과 아세라를 멸망시키지 않으십니까? 불만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
③ 엘리야의 마음속에 '나 한사람이 했는데 더 이상은 어떻게도 할 수 없습니다.' 는 힘의 한계를 느끼며 피곤이 와서 하는 말?
④ 혹시 엘리야 마음속에 '내가 바알을 물리쳤다'는 자기 과신이나 자만심이 들어있어서 '나만 남았다'고 했을 수도 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의 도구일 때 능력이 나타난다. 도구는 쓰는 이의 방법과 힘을 전달할 뿐이다. 만약 도구가 '내 힘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도구는 쓰는 이에게 절대 복종만 하면 된다. 목회의 경우도 목회가 잘 나가거나, 성공적 효과가 있을 때 목회자의 마음속에 '나 하나밖에 없다'는 자기 과신이나 자만심이 들어가기가 쉽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백해무익한 생각이다. 목회(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도구일 뿐이어야 한다, 인간의 힘이 개입되면 실패가 온다.
엘리야가 이렇게 극한 상황 속에서 '나만 홀로 남았다'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해석하기를 "'7천'의 7은 완전 수자이고, '千'은 크고 많은 수를 가르친다."고 하였다. '남기리니'(히브리 원어, ra'v;{shaw-ar' 솨아르})는 동사인데 '여유가 있게 :- 남긴다,' 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너 혼자라고 탓할 것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멸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자들, 곧 하나님의 일에 꼭 필요한 (너와 함께할) 많은 수의 사람들을 여유 있게 남겨 두신다."는 말씀이다.
즉 엘리야가 바알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물리치신다는 것이다. 엘리야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남겨둔 많은 참 신자들이 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늘의 이북에 관해서도 꼭 같이 적용할 수 있다. "내가 이북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무신론에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인간우상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지난 1950년 6.25야말로 한국의 갈멜 산 판가름 대결전이었다. 이북 공산군대가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대 우세한 대군으로 남한의 나라와 기독교 하나님 종교를 말살하여 무신 인간우상의 나라로 만들려고 기습 침공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6.25를 통하여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기독교 신앙 대 부흥을 일으키게 하셨다. 그 과정에서 U.N.군이 이북에 진격했다가 후퇴하였을 때, 그 기회에 이북에 있었던 기독교인들이 집과 논과 밭을 다 버리고 오직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남한으로 피난하여 왔다. 그들 중에 월남한 것을 후회하는 신자는 하나도 없었다. 왜냐? 예수 믿는 것만으로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수주일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고, 예배드리는 일과 교회봉사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자진하여 열심히 하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 완전히 무소유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깊은 본질적인 참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려주시고 신앙생활하게 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한 것이다. 그들 마음속에는 항상 그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과 살려주신 것에 대한 소명감이 가득해서 하나님 사업에 앞장섰다. 남한에서 새로 가지게 된 모든 것이 축복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송두리째 하나님 앞에 먼저 바쳤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남긴 7千 명이었다. 이들이 남한의 한국교회 급성장의 불을 붙였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북한 상황을 보며 엘리야 선지의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는 부르짖음에 동감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이북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무신론에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인간우상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말씀하시는 음성을 똑똑히 듣자.
탈북동포들, 중국동포들, 조선족들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일꾼으로서 필요한 사람으로 맞는 것은 정부나 사회에 맡기고, 우리 남한의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남긴 칠천 명이라고 보고 그들의 기대에 실망을 주지 않는 뜨거운 신앙으로 맞고, 그들을 앞지를 수 있는 믿음의 본을 보여야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기신 뜻에 맞는 삶이다. 이것이 그들과 함께 남북을 복음화 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유일의 길이다.
한참 핍박의 피바람이 불 때 중공의 지하교인이 사선을 넘어 탈출에 성공하여 홍콩에 이르렀는데, 살아났고 자유를 얻었다는 기쁨보다, 홍콩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세속화된 맥없는 신앙생활을 보고 너무 실망이 되고 두려워서 다시 핍박과 죽음의 땅 중공으로 돌아간 일들이 있었다. 오늘 북한 죽음의 땅에서 목숨 걸고 신앙 지키던 '남긴 칠천 명'이 우리 남한에 나와 세속에 타락한 우리 신앙생활을 보고 실망하고 되돌아갈 상황이 아닌가를 살피자?! 바로 그들에게 신앙적 실망을 주는 点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없는 상태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남한의 교회가 겨우 탈북동포들, 중국동포들, 조선족들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일꾼으로서 필요한 사람으로 맞는 것 정도로는 한반도에서 바알 우상이 물러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한반도에서 바알을 물리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칠천 명을 남기신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탈북동포들, 중국동포들, 조선족들과 아직 북한 안에 있는 남기신 그들과 함께 신앙의 불을 붙이는데 생명을 걸아야 한다.
'主님이시여! 이 아침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한반도에서 바알 우상을 훼파하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세울 남긴 칠천 명에 들게 하소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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