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도 우울증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된다"
[기독일보 국제부] 미국 오리건주 출신의 크로아티아 선교사 로실린드 주키치(Rosilind Jukic)가 "우울증에 빠진 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3가지"(3 Things to Not Say to Someone in Depression)라는 칼럼을 통해 이와 같이 말했다. 다음은 칼럼 전문이다.
"우울증에 빠진 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3가지"(3 Things to Not Say to Someone in Depression)
때때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동시에 정직해야 한다는 두 가지 사이에서의 균형 잡힌 행동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진실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의 삶에서 기쁨을 보지 못하는 것은 좋은 간증거리가 되지도 못한다.
나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다른 불신자들처럼 우울증과 씨름하고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우울증에 굴복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춘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기독교인은 우울증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며, 이들은 우울증에 빠진 형제나 자매를 발견하면 정죄부터 하기 시작한다.
지난주 성경공부에서 우리는 우울증에 빠진 욥을 발견하게 됐다. 욥기 7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입을 막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영혼의 고통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내 영혼의 쓴뿌리(bitterness)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욥 7:11).
그 주에 그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고, 악몽 때문에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는 모든 자녀들을 잃어버렸고, 그의 부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건강마저도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처한 사람이 어떻게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우울증은 정상적인 것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우리가 그것에 굴복할 때다.
욥은 굴복하지 않고 싸웠고 기도했다. 그리고 주께서는 마침내 그에게 상을 베푸셨다.
그렇다면 형제나 자매가 우울증에 빠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먼저 우울증에 빠진 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말을 소개하겠다.
1. "그만 잊어버려. 빨리 극복하고 일어나"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금방 극복할 수 있는 우울증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시 일어나 거기에서 벗어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정신 약물들을 복용하는 이유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고통이 올바른, 타당한 것이 아니라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다.
2. "우울증에 빠진 걸 보니 무슨 죄를 지었나 보네요."
이것은 실제로 욥의 친구가 욥에게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욥기의 마지막 장인 42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Eliphaz)에게 하셨던 말씀을 알고 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 42:7).
욥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의로운 자였다. 따라서 욥의 친구는 그에 대해, 그에게 잘못된 말을 한 것이었다.
설령 우울증이 죄로 인한 결과인 것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적절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올바른 말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때에 하게 되면, 그를 회개로 이끌 수 있도록 돕는 기회의 문을 닫아버릴 수 있다.
3. "우울증에 빠진 이유는 네가 믿음이 없어서야."
일부에서는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면, 행복하지 않다면, 성공적이지 않다면 바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신학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돈이 많은 것을, 행복한 것을, 성공의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의 척도로 여긴다.
그런데 나는 신성모독적인 삶을 살아가는 불신자들 가운데서 부자이고 행복에 겨워하는, 성공의 삶을 구가하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반면에 매우 많은 헌신적인 기독교인들은 세상적 기준에 비추어보면 가난하고 성공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전혀 행복해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는 욥기서 7장에서 엘리바스가 이런 신앙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잘못된 일이 일어난다 =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삶이 이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마주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으로 이루신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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