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국제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말씀을 전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이들, 설교자들은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도덕적 탈선에 대해 정죄하고 죄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에 대해 타협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이들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지만, 세상과 세속적인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죄에 대해 도전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경멸한다"
마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10)란 구절을 보는 듯 하다. 그렇다. 설교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캘리포니아주 안텔로프 밸리에 위치한 웨스트사이드크리스천펠로우십교회(Westside Christian Fellowship Church)의 셰인 아이들만(Shane Idleman) 목사가 최근 "사람들은 왜 설교자를 증오할까?"(Why Do Many People Hate Preachers?)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진리를 전하는 설교자에 대해 세상이 미워하고 증오하는 이유를 소개했다.
셰인 아이들만 목사는 "설교자는 마음을 찟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목회자는 그것을 꿰매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설교자는 회개에 초점을 두고, 목회자는 회복에 초점을 둔다"고 설명하고, "설교자와 목회자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면서 "목회자는 마인드(mind, 생각)에 목표를 두지만, 설교자는 마음(heart)에, 감정(emotion)에 초점을 두며 이것을 휘젓거나 유죄 판결을 내린다"고 했다. 이어 설교자와 목회자의 차이 10가지를 이야기 했다.
▶목회자가 세운 것을 설교자는 허문다.
▶목회자는 상담을 하지만 설교자는 유죄 판결을 내린다.
▶목회자는 기뻐하지만 설교자는 슬피 운다.
▶목회자는 심지만 설교자는 뿌리를 뽑아버린다.
▶목회자는 가르치지만 설교자는 선포한다.
▶목회자는 꿰매지만 설교자는 찢는다.
▶목회자는 소망으로 가득하지만 설교자는 불로 가득하다.
▶목회자는 청종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설교자는 말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는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좋은 모습을 보지만, 설교자는 사람 안에 있는 타락(죄)를 본다.
▶목회자는 사람들 가운데 있기를 원하지만 설교자는 하나님과 함께 홀로 있기를 원한다.
아이들만 목사는 "유명한 청교도 라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는 '나는 죽어가는 사람으로써 죽어가는 사람에게 설교한다'고 말했다"고 지적하고, "죽어가는 사람으로써 죽어가는 민족과 국가에게 설교하고, 교회와 민족과 국가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절실히 들을 필요가 있다. 깨어나기 위해, 유죄 판결을 받고 회복되기 위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모든 목회자들은 우리가 '교회를 하는(do church)' 방식을 세상이 사랑할까?, 당신의 교회가 단 한 번도 도전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낼까?, 당신의 교회가 단 한 번도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좋아할까?, 당신이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한 번도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워할까?에 대해 반드시 질문해보아야 한다"면서 "그렇다면, 당신은 다시 한 번 진정한 제자들은 그들이 진리를 회피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과 증오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숙고해보기를 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이들만 목사는 레오나르드 레이븐힐(Leonard Ravenhill)의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Why Revival Tarries, 규장 역간, 원 뜻은 부흥이 더디 일어나는 이유)라는 책을 인용해 설명했는데, 레이븐힐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스페셜리스트를 가지고 계신데, 그들의 주된 관심은 국가와 국민, 교회의 도덕적 붕괴에 있었다. 옐리야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 그리고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난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공의로 꾸짖고 책망하고 권면했다. 이러한 사람은 극단적이거나 급진적인, 근본적이고 과격한 경향이 있다. 그를 보기 위해 모여든 호기심 어린 군중들은 곧 극단적이고, 광신적이며 부정적이라고 딱지를 붇이겠지만, 사실은 그들은 올바른 사람들, 의의 사람들이며,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짐을 무시할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아이들만 목사는 토저(A.W. Tozer)의 "예언자적 설교"(Prophetic Preaching)라는 글도 인용했다. 그는 토저가 이 글에서 정곡을 찌르는 핵심적인 말을 했다면서 "기독교가 다시 원기를 회복한다면, 그것은 지금 사용되고 있는 어떤 수단이 아닌 다른 수단에 의한 것일 것이다. 후반세기(second half of this century)에 있는 교회들이 전반세기에 고통을 당했던 부상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설교자가 나타나야만 한다. 회당장 형태의 설교자는 결코 아닐 것이며(회당장은 회당을 관리하는 역할만 했지 설교의 역할을 맡지는 않았다), 사례비만 받고 아무런 질문도 없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제사장 형태의 설교자도 아닐 것이며, 기독교 종교를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아는 말만 번드르르한 목회자 타입의 설교자도 아니다. 이들 모두가 시도됐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었다고 소개했다.
토저는 또 이렇게 말했다. "다른 형태의 종교 지도자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야 하는데, 그는 하나님의 환상을 볼 수 있고 그 보좌로부터 전해져 오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구약의 선지자 형태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가 나타나면(나는 하나님께서 이런 자가 한 명이 아닌 많은 자들을 허락하시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히죽거리고 겉만 번드르르한 문명이 사랑하는 모든 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으로 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반대하고, 비난하고, 저항할 것이며,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증오와 반대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기름기가 없어 호리호리하고, 세련되지 않고, 무뚝뚝하고, 세상에 대해 다소 분노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호흡하지 못할, 영원히 살지 못한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아이들만 목사는 "나는 하나님께서 미국과 세계와 사람들의 무릎을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설교를 빚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관통하도록 허용하는 많은 겸비한 목회자들을 세워주시기를 기도한다"고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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