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경전인 꾸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이는 7세기 사용하던 문어체 아랍어로 기록된 꾸란만 진짜 꾸란이고 다른 언어로 번역된 꾸란은 꾸란이 아니라고 하는 이슬람의 율법 때문이다. 평범한 무슬림들은 쌀라트(Salat)라는 하루에 다섯 번씩 드리는 의례적 기도를 드릴 때 외워야 하는 꾸란 제 1장 개경(알 파티하)장을 아랍어로 외우기도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확신하고 있는 것이 있다. 즉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배척한 기독교와 유대교는 타락된 종교라는 것과, 그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신구약 성경은 원본을 분실해버리고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멋대로 의미가 변질되고 왜곡된 경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라께서 하늘에 보관된 원본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무함마드에게 계시해 내려준 경전이 꾸란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처럼 무슬림들이 소수에 불과한 환경에서는 간단히 창조주가 인류의 지침으로 내려준 경전의 최종 교정본이 꾸란이며 그 이전 경전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거나 폐기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지금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을 변질된 책으로 부르며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무함마드가 받았다는 일방적인 계시에 의한 것이지만 그 주장에 대한 역사적 근거도 없고 입증할만한 자료도 없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성경의 일부분만 뜯어내어 문맥과 상관없이 자기들이 편리한대로 인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무슬림들의 강력한 주장에 맞서 언성을 높이며 싸울 필요가 없다. 그저 단순히 “성경이 언제 변질되었느냐?”고 물으면 된다. 무함마드 이전이냐? 아니면 무함마드 이후냐? 아니면 무함마드 당시에 변질되었느냐고 물으면 객관적으로 납득할만한 방법으로 답변할 근거자료가 없다. 꾸란의 기록을 보면 무함마드가 포교를 시작한 초기(주후610~622년) 힘이 없을 때는 성경이 진리라고 했다가(꾸란46:12) 메디나에 와서 최고 통치권을 손에 넣고 힘이 생기자 자신을 거부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계시가 내려왔다고 주장했다.(꾸란5:13)
이것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을 핍박해야 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주전 2세기부터 주후 1세기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성경의 사본이 1947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되고 그후 10년간 인근 동굴에서 800여 두루마리 사본이 발견되어 연구해 보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전혀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경이 변질된 것이 아니라 무함마드의 입장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말하지는 않지만 신구약 성경에 무함마드에 대해서 많이 예언해 놓았는데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이를 모두 삭제해 버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꾸란7:157)
그래서 충성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주장하는 성경 변질론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주장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면 구약의 모세가 말하던 “나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겠다고 예언한 것”(신명기18:15)은 무함마드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내 뒤에 올 보혜사 성령(요14~16장)”이 바로 무함마드라는 주장이다.
이슬람 저서들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ήτος)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페리클뤼토스(περικλύτος, 빛나는 자, 칭찬 받을 자)였는데 이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빛나는 자, 혹은 칭찬받을 자라는 아랍어가 아흐마드(AHMAD)인데 이는 무함마드와 어원이 같은 단어이며 실제로 무함마드의 별명이기도 하다는 그럴듯한 주장이다.(꾸란61:6) 초대교회 성도들의 성경 필사 열정과 필사 후 원본과의 대조 확인 과정은 매우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 단어에서 모음 4개 중 3개 즉 75%를 잘못 필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보혜사라는 특수한 단어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하셨던 말씀 중에 4차례 언급된다. 그런데 4차례 등장할 때마다 75%씩의 모음을 잘못 필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0 %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소위 이슬람의 유명 학자라는 분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만들어 내면 무슬림(복종하는 자)들은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그대로 일파만파로 퍼뜨려 결국 이슬람의 정설이 되고 교리가 된다.
무함마드가 보혜사라는 주장에 대해서 충성된 이슬람 학자들의 만들어 낸 변증론들을 보면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성령이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인용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여기서 영이란 거짓 선지자를 의미하므로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선지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경에 보면 보혜사(παρακλήτος)가 대언자 혹은 영어로 advocate(후원자 지지자 옹호자)라고 번역된 곳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여기서 대언자라는 단어는 보혜사를 의미하는 파라클레토스가 사용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신 말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하셨다.(요14:16) “또 다른”이란 말은 종류는 같은데 개체가 다르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성령을 보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같은 인간인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를 보내겠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요14:16)
또한 무함마드는 죽었는데 어떻게 영원히 성도들과 함께 있겠느냐(요14:16)고 물으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들면서 부자가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눅16:29)고 하셨다. 모세는 이미 오래 전 시대에 살던 사람이고 죽어서 땅 속에 묻혔는데 어떻게 모세에게 물으란 말인가? 그러므로 이는 모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과 교훈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또 다른 보혜사 무함마드가 영원히 함께 있겠다는 것은 무함마드를 통해서 주신 교훈과 꾸란이 영원히 함께 있겠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또한 보혜사는 성령이 아니라는 증거로 “예수께서 내가 가면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하셨는데 성령은 예수님이 가시기 전에 벌써 구약시대부터 세상에 계셨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성령이 세례 받는 예수님께 비둘기처럼 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구약에서도 성령이 다윗에게 감동하여 “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막12:36)”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세상에 계셔서 필요한 일들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보내시겠다는 보혜사는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함마드가 맞는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코웃음 치기에는 너무 정교하게 조작되어 있다. 성경말씀을 인용하니 거부할 방법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믿음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웬만한 성경지식으로는 설득을 당할 수밖에 없고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논리적으로 즉시 반박하기 힘든 주장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유럽과 미주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80%가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제 이슬람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정신 차리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늑대에게 양들을 빼앗기고 어쩔 줄 몰라 땅을 치며 슬피 우는 불쌍한 목자의 처지가 될 것이다.(한장총 이슬람 선교훈련원)
* 위 글은 한국이란인교회(4him.or.kr)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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