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고 사도바울도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 하였다(고후 3:17).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어진 죄와 하나님의 진노, 율법의 저주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되는 영적 자유이다(웨민 20.1). 그러므로 자유를 구실로 죄를 범하거나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된다(갈 5:13).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오로지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허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자유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귀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패트릭 헨리가 세인트 죤스 교회에서 외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절규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근대 시민혁명과 그 결과 제정된 근대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가장 중요한 기본권으로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종교적 존재이기에 자유 중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가장 핵심이며 종교의 자유로부터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 여러 자유권이 파생되었음은 인류의 유구한 역사가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과 기도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로마시대 초대교회가 받은 박해는 물론이고, 종교개혁 이후 서구 각국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조선조 말기 천주교 박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등은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의 자유, 특히 역사가 140년에 불과한 기독교가 지도적인 종교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된 데에는 기독교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복음전파와 함께 교육과 의료를 통해 나라를 잃고 절망에 빠졌던 국민들에게 소망을 주고 인재를 양성하여 오늘과 같은 경제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술과 담배, 도박 등이 만연하던 당시의 해이한 국민의식과 방탕한 생활습관을 개혁하여 건전한 시민사회의 윤리를 확립하였다. 고아원 등 복지시설을 건립하여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품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국가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그결과 식민통치를 경험하였던 많은 국가에서 기독교가 피지배민족을 통치하는 이념적 도구로 악용되어 배척받았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일제에 대항해서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나라를 개화하는데 기여한 민족 종교가 되었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흥하여 열방을 향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세움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이른바 ‘믿지 않을 자유’를 내세워 기독교를 공격하는 안티기독교 세력의 준동과 ‘인권과 차별금지’를 앞세워 대다수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고 선교의 길을 위협하는 입법적, 사법적 시도가 확산되고 있음은 지극히 우려스럽다. 주님이 주신 자유, 믿음의 선조들이 피흘려 지킨 자유를 위해 다시 한번 큰 희생이 요구되는 어두운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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