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나훔 1:8).
여호와는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분이며,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영원한 통치를 베푸시는 분이다. 그러니 모든 거민들은 여호와께 복종하게 되고야 말리라는 사실이다. 즉, 이방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심판이 시행될 것이다.
미국의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68)은 즐겨 성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작품을 썼다. 특히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1939)는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가지만, 현실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정을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에서 빚어지는 상황에 비유하여 묘사한 작품이다.
오클라호마에는 올에도 폭풍이 불어 닥쳤다. 조드 일가는 빚 때문에 땅을 자본가에게 빼앗겼다. 조드 일가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캘리포니아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는 일자리가 많고 임금(賃金)도 비싸다는 전단(傳單)을 본 것이다.
조드 일가는 돈을 모두 털어 낡은 트럭을 사서 서부를 향해 떠났다. 첫날 길에서 노숙(露宿)하면서 할아버지가 죽었다.
잇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조드 일가는 뉴멕시코를 지나고 애리조나의 산들을 넘어서 캘리포니아에 이르렀다. 대사막을 지나갈 때에 할머니가 죽었다.
국경 캠프의 설비는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었다. 일자리가 있다 하여 먼 곳에 찾아갔다. 그 일자리는 파업을 일으킨 자리를 메우기 위한 임시적인 일당(日當) 노동이었다.
그날 밤 조드의 아들 톰은 동맹파업을 하는 현장에 갔다가 감시인에게 두들겨 맞았다. 톰은 얼굴에 부상을 입고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까스로 찾은 일자리는 목화밭에서 솜을 따는 일이었다. 그 일당(日當) 임금(賃金)은 1 달러도 아닌 90 센트였다. 온 가족은 그 일이라도 해야만 하였다.
장마철이 되었다. 이제 솜을 따는 일자리도 없었다. 그런 어려움의 북새통에서 조드의 딸 ‘사론의 장미’는 해산하다가 죽은 아이를 낳았다.
다음날 아침, 비를 피하여 조드 일가는 빈 창고에 갔다. 그 창고에는 장정(壯丁) 한명이 쓰러져 있었다. ‘사론의 장미’는 그 사나이 머리를 붙들고,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자기 젖꼭지를 굶어 죽게 된 사나이의 입에 물려 주면서 신비한 웃음을 지었다.
이 작품은 1930년대의 불황기(不況期)에 천재(天災)와 악덕지주들에 의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수십만 명의 가난한 생태(生態)를 냉정하게 묘사한 기록문학이다.
고물 자동차를 몰고 하이웨이를 달려 캘리포니아로 향해 가는 조드 일가를 비롯한 구직자(求職者)의 무리는, 애굽에서 탈출하여 사십 년 동안 광야를 헤매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 민족과 다를 바 없다.
‘사론의 장미’가 사나이의 입에 젖꼭지를 물리며 신비한 미소를 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스라엘 민족은 온갖 시련을 겪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역사(歷史)를 주관하는 신(神)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애굽의 바로도 가나안의 거인족(巨人族)도 그리고 기계문명도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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