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 서신 예수: 대제사장에 의해 신성모독죄로 유대법에 고발되심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예수는 체포되어 먼저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 다음에 총독 빌라도 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는다.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예수 심문은 본격적인 재판이 아니라 예수 판결을 로마 총독에게 넘기려는 결정을 내리기 위한 심문이었다.. 심문에 있어서 두가지 고발이 제기되었다.

첫째 고발은 성전 정화 행위에 대한 예수의 해석이 심문의 대상이었다. 예수의 성전 부정(否定)과 정화(淨化) 행위 그리고 율법 부정(否定)에 대한 설교와 가르침이 바로 당시 유대교 지도자층으로 하여금 예수를 처형하도록 고발하고 체포하도록 하기에 이른 것이다. 예수는 종교지도자들의 수하들에 의해 끌려가 먼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가서 심문을 받는다. 대제사장들과 공의회는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증거를 찾는다. 많은 거짓 증인들이 왔으나 참 증거를 얻지 못한다. 후에 두 사람이 와서 증언한다: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마 26:61).

둘째 고발은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메시아’로 참칭(僭稱)했다는 것이다. 가야바는 예수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요 18:33)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요 5:18)이라고 참칭(僭稱)하여 민중들을 미혹하는 신성모독죄를 지었다고 고발한다.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는 자기를 고발하는 여러 질문에 대하여 변명하려고 하지 않고 침묵하신다. 가야바는 예수께 묻는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 26:63). 이에 예수는 대답하신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이러한 예수의 대답은 시편 메시아 예언 구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를 상기시킨다. 예수는 이러한 시편 구절에 호소함으로써 하나님의 신원(vindication)을 예견했으며, 그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함께 누리며(sharing with the presence of God and glory) 하나님의 존전(尊前)으로 인도될 것을 기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유대 지도자들은 갈릴리 출신의 젊은 랍비인 예수가 그런 위대한 인물이 아니며, 그런 높임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가가 전하는 예수의 말씀: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막 14:62) 그리고 누가가 전하는 예수의 말씀: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눅 22:69)는 다니엘이 전하는 인자(the Son of Man)에 관한 예언 말씀: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을 암시한다. 여기서 “구름타고 오는 인자”란 히브리 성경에서는 오직 신적인 존재에게만 해당한다. 예수의 대답이 암시하는 것은 그가 인자로서 심판을 집행하러 온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지금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예수는 심문과정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거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바로 곁에 있음을 암시하였다. 이러한 예수의 대답은 자신을 하나님과의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유일한 영광에 대한 신성모독(blasphemy, 神聖冒瀆)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특히 다니엘의 인자에 대한 예수의 언급은 유대 지도자들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었다. 예수가 지금은 비록 피고로 심문을 받고 있으나 언제가는 유대 지도자들의 재판관이 될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가야바는 이 말을 듣고 옷을 찟고 말한다: “그가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마 26:65). 비통과 고통의 표시로서 옷을 찢는 관습은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일종의 의식(儀式)이 되어 있었다. 당시 재판관들이 재판 진행 중에 신성모독의 말을 청취해야 했거나 어떤 사람을 신성모독죄로 판정을 내렸을 때에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 자신을 메시아라 함은 이스라엘 왕이라 칭하는 것이며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참람죄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 처형의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걸린 것이다.

가야바는 공의회 회원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묻는다. 모두들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마 26:66)고 말한다. 이에 이들은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마 26:67) 말한다: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마 26:68) 하더라. 이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놀린다. 메시아란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메시아(Messiah, חשׂמ)는 히브리 말이요, 그리스도(Christos)란 희랍 말이다.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라는 뜻을 지닌다. 진정한 메시아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마치 저런 자가 메시아인가라고 여겨질 정도로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진정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나타나시는 모습이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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