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의식의 내면화는 부채 의식의 또 다른 표현”
세계 각국은 예외 없이 국립묘지를 두고 있다. 군인 묘지 외에 위인들을 위한 별도의 장소가 마련된 나라도 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프랑스의 팡테옹 등이 그런 곳이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보호해 준 외국인을 ‘열방의 의인’이라 하며 특별히 대우한다. 51개 국가에서 26,513명을 선정하였다. 예루살렘에 600만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시설인 야드바셈의 열방의 의인 정원 벽면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의인에 선정된 사람에게는 메달과 증서와 명예 시민권을 주며 이스라엘에 거주를 원하면 국적이나 영주권 취득에 우선권이 주어지고 연금, 주택, 의료, 요양 서비스가 제공된다.
서울 현충원에 묻힌 외국인은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외에 두 사람이 더 있다. 평양에 거주하던 화교 지앙 훼이린은 1950년 11월 중공군이 개입하자 육군 제1사단 15연대에 자원입대하여 중국인 특별수색대 부대장으로 활약하다가 1951년 2월 경기도 과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에게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신의주에 거주하던 웨이시팡은 국부군의 대위로 복무하던 중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후 신의주로 와서 장산 탄광 광부로 있었다. 1950년 10월 국군 제1사단 수색대에 들어가 활약하였고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유엔군은 연인원 194만 7,087명이 참전하여 전사 40,670명, 부상 104,280명, 실종 4,116명, 포로 5,815명 등 154,881명이 희생되었다. 그중 미군 희생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사 36,940명, 부상 92,134명, 실종 3,737명, 포로 4,439명 등이다.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는 2,320위가 안장되어 있다. 국가별로는 영국 890명, 튀르키예 462명, 캐나다 381명, 오스트레일리아 281명, 네덜란드 122명, 프랑스 47명, 미국 40명, 뉴질랜드 32명, 남아공 11명, 노르웨이 1명, 연합군 무명용사 15명, 한국 38명이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한 에티오피아는 3,518명 중 121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657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한 명의 포로도 남기지 않았다. 이들은 출정식에서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국은 장군 이상의 고위층 자녀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이 전사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소령도 참전했다. 워커 미8군 사령관의 아들 샘 워커 대위, 미 제1해병항공단장 필드 해리스 장군의 외아들 윌리엄 중령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미 제9군단 무어 소장은 남한강 도하작전에서 전사했고 유엔사령관 클라크 장군의 아들 윌리엄 대위는 1951년 가을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세 차례나 부상을 입고 전역했지만 사망했다. 벤플리트 장군의 아들 2세는 B-26 폭격기 조종사로 1952년 4월 해주에서 적의 대공포를 맞았다. 미군 중에는 야구선수 출신 448명이 참전하여 24명이 전사했다.
프랑스의 3성 장군 몽클라브 사령관은 중령으로 계급을 낮추어서 대대장으로 참전하여 지평리 전투에서 직접 중공군과 백병전으로 한국을 지켜냈다. 벨기에의 상원의원이며 국방부 장관인 앙리 모로 드 믈랑은 육군 소령으로 참전하였다.
미 제2군수 사령관 리처드 위트컴 장군은 1953년 11월 6,000채의 가옥이 불타고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부산역 일대 대화재를 보고 군수창고를 열어서 긴급구호에 나섰다. 그 일로 의회 청문회에 섰지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해서 기립박수와 함께 많은 구호품을 지원받아 부산으로 돌아와서 191개의 미군의 원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또 한국 정부를 설득하여 부산대학교 부지 50만 평을 확보하여 건축자재와 공병대를 지원하고 미군 장병의 봉급 1%를 건축비로 모금했으며 성분도병원, 보육원을 건립하고 1982년 7월 유엔 기념공원에 묻혔다.
서울 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 2, 3묘역에는 국가 사회 발전에 현저한 공헌이 있는 분들이 안장되어 있다. 주시경(국어학자), 이태규(과학자), 김준(새마을운동 중앙회장), 박태준(포항제철 회장), 서영훈(대한적십자사 총재), 서윤복(마라톤 선수), 엄운규(국기원장), 이태영(변호사) 등이다. 대전 현충원에는 사회공헌자 묘역이 있으며, 김일(체육인), 박영하(을지재단 설립자), 손기정(체육인), 윤석중(아동문학가), 이종욱(세계 보건기구 사무총장), 조오련(체육인) 등이 있다.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는 2,321위가 안장되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현충원을 돌아보지만 무거운 마음을 짓누른다. 묘역마다 빼곡히 늘어선 비석에 다가가 보면, 사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곳은 자유 대한민국의 기억의 터이다. 보훈 의식의 내면화는 부채 의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범희 목사(6.25역사기억연대 부대표, 6.25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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