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의 하나님 이해는 구속주 하나님보다는 창조주 하나님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구속주 하나님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이라면, 창조주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에 이루어진 구속을 믿음으로 수용한 사람에게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이러한 신 이해에 의하면 인류는 구원받을 자와 구원 얻지 못할 자로 구분된다.
반면에 창조 안에 나타난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만물을 종국적으로 완성하실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연히 강조점은 만물의 구원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서는 자연히 심판보다는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강하게 부각된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게 되면 자연히 심판보다는 사랑을 더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에큐메니칼 신 이해는 전통적인 이해와 달리 구속자보다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보다는 사랑으로 만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이 선교에는 어떤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전통적인 선교는 창조세계의 보존 및 생명 살림 등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했다. 창조질서 문제나 생명 문제가 신학의 주제로 대두된 것 자체가 상당히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이 세상에 어차피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세상은 어차피 멸망할 세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는 창조질서 보존 등의 차원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신학이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게 되면서 기독교는 창조 세계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또한 기독교의 선교는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감과 생명을 살리는 선교 차원을 많이 강조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선교가 주로 영혼 구원에 대한 책임만을 많이 강조한 반면, 에큐메니칼 선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통전적인 생명살림을 함께 추구하는 폭넓은 선교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은 에큐메니칼 신 이해가 선교에 미치는 주된 기여점 중의 하나로 보여진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기여가 있는 반면, 구속주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더 강조하는 경향은 부작용도 가져올 수 있다. 창조를 강조할 때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고 결국 그 창조 세계를 완성할 것이며 그것은 만물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신학의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명확하게 만인구원설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종국적으로 만물이 완성될 것이라는 표현 아래에서 만인 구원이 은연 중에 드러난다. 이와 같이 창조를 강조하게 되면 자연히 만유구원의 경향으로 흐르게 되고, 이러한 사고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가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만물이 구원의 반열에 들 것이라는 사고는 세상을 향해서는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말의 날은 심판이 아니라 해방의 날이라는 말도 매우 소망적인 소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종국적으로 구원에 들어가게 되고, 어느 누구도 심판을 받지 않게 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예수 믿을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될 수 있으며, 심판대 앞에 설 날을 생각하면서 늘 경건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가 희박해져버리고 말 것이다. 마르크스가 빈부 간의 격차 없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 이상은 그럴듯했지만 결국 현실로 나타난 것은 모두가 함께 못사는 사회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종말의 날에 창조를 완성하신다는 말은 매우 희망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적으로는 방탕과 방종을 불러오고 십자가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그 십자가를 전하는 교회와 선교를 불필요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경향은 결국 전도와 회개를 외치는 선교의 약화를 가져오고, 자연히 교회를 약화시키는 선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계속)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승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