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임마누엘 주님의 탄생이 불안과 공포와 애통에 싸인 인류에게 자유와 평강으로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날을 기억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아기 예수 성탄이 단지 교회와 성도들 간의 축하 행사로 그쳐선 안 될 이유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아 한국교회 주요 교단과 단체들은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대한민국과 온 세계에 임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성탄절에 즈음해 발표한 메시지마다 예전과 다른 무거운 공기가 감지된다. 대통령의 한밤중 계엄령 선포로 촉발된 탄핵사태로 정국이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맞는 성탄절이란 점에서 한국교회의 비장한 심정이 엿보인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성탄절을 맞아 지금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을 되찾기 위해선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혼란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교회들마다 성탄축하 행사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떠들썩한 내부 행사보다는 쪽방촌과 노숙인 쉼터, 미혼모 시설 등을 찾아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뚜렷하다.
한국교회는 성탄절뿐 아니라 항시 아주 작은 것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웃 사랑 실천이 일종의 관습처럼 굳어지게 된 건 140년 전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을 증거하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은 나라와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촛불처럼 자기를 태우는 희생으로 나타났다. 모두가 나라를 잃은 깊은 좌절의 늪에 빠졌을 때 기독교 지도자들의 손에 들리운 희망의 등불이 민족의 가슴에 빛과 소금이 되어 조국 광복과 경제 부흥,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그 영광의 빛을 차츰 잃어가고 있다. 교회가 부흥 성장을 거듭해 대형화될수록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지고 이제는 조롱거리가 되어 짓밟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국사회와 교회까지 저마다 위기를 저출산에서 찾으려 하나 실제 교회에 닥친 위기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과 그 의미와는 다른 길을 걸은 데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한국교회가 성탄절과 특정한 시기에 연중행사처럼 벌이는 자선과 구제를 더는 감사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마음 한구석 양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기부와 적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지난 세기에 이룩한 부흥 성장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그 뜨거운 복음의 열정으로 인해 성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교회의 외형이 커졌다. 하지만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면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보리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교회는 겸손과 낮아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물질적 욕망을 좇는 이익집단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게 세상 사람들의 시각이다. 이들의 교회에 대한 시선과 평가가 정확하다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셔서 나를 선택하셨는데 교회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온몸 다해 세상을 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최근 발표된 우리나라 종교별 인구 비율은 기독교 17%, 불교 12%, 가톨릭 8%, 기타 0.3%로 나타났다. 놀라운 건 무종교가 63%라는 점이다. 한때 기독교인 수는 전체 인구에 20~25% 수준이었으나 10%대로 내려앉고 말았다. 대신 종교가 없다는 무신론자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이 종교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의 급증과 함께 사회적 영향력 면에서 다른 종교에 뒤처지는 뼈아픈 현실은 모두의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택한 백성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왜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그 필연성을 지닌 날인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를, 굶주린 사람에겐 생명의 떡을, 고달픈 사람에겐 안식을, 불안한 사람에겐 평안을, 병든 사람에겐 치료를, 어두움이 있는 곳엔 광명을, 미움이 있는 곳엔 사랑을, 절망이 있는 곳엔 소망을, 죽음을 부활 생명으로 바꿔주셨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 세상을 향해 무얼 하고 있나. 작은 구제와 적선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자족할 때는 분명 아니라고 본다.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오신 예수 성탄의 뜻을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가리고 욕되게 하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볼 때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