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11시에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해 나라 안팎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국회가 4일 새벽 재적 190명 전원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하고, 이를 윤 대통령이 즉각 수용함으로써 비상계엄령은 선포 6시간 만에 해제됐다.
헌법 제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헌법 조항에 근거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시기인가에 대해선 많은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긴급 담화에서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지금 종북 세력이 자유 헌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자유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간부 3명에 대한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으로선 현 정부를 정치적으로 무력화하고 사실상 권력을 넘겨받으려는 시도로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판단이 비상계엄 선포의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민주당은 윤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서 22건이나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야당의 행안부 장관과 검사 탄핵 소추가 잇따라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됐음에도 계속해서 방통위원장, 감사위원장, 중앙지검장 탄핵을 추진하자 이를 입법부의 행정 권력 무력화 시도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난맥상을 비상계엄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판이다. 지금이 과연 국가비상사태 시기인가에 대한 논란을 떠나 대통령이 국회 의석 과반수 찬성이면 해제해야 하는 비상계엄이 먹혀들 것으로 생각한 게 문제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에 꺼내든 대통령의 계엄 카드가 야당의 공세로 인해 야기된 정치적 수세를 돌파하기 위한 자위 수단으로 비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모두 16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그때는 민주화 시기 이전이라 군을 장악한 군사정부가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를 활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 내리고 어느덧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런 시기에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 생활 전반을 통제하는 계엄령 선포는 국가 경제와 국제 신인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제 사회적 타격이 아닐 수 있다. 정말 온 국민이 대통령의 결단을 우국충정으로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 대답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4일 새벽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한다”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6시간 만에 스스로 계엄령을 해제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만약 시간을 지체했더라면 민주주의 헌정질서 파괴라는 더 큰 불행이 초래될 수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근거를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표현했다. 여기서 윤 대통령이 염두에 둔 반 국가세력이란 정부와 검찰을 겁박하는 야당과 민노총 등의 세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윤 정부가 출범한 후 야당은 정부가 가는 방향에 수없이 딴지를 걸어왔다. 아예 행정 무력화를 시도하는 등 협치를 완전히 상실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야당의 폭주에 거부권으로 일관해 온 대통령의 부정적인 인식이 오늘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야당을 반 국가세력으로 지칭하고 적으로 돌린 대통령의 인식은 더 큰 문제다. 이는 국민의 눈에 국회의 입법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 야당이 수를 이용해 입법권을 남용하고 탄핵을 남발했더라도 이는 정치의 영역 안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지 한밤중에 군사력을 동원하는 초법적 수단으로 막으려 했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를 빌미로 윤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자진해 사퇴하지 않으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연 뒤 발표한 결의문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원천 무효이자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며 “이는 엄중한 내란 행위이자 완벽한 탄핵 사유”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가 야당의 폭주가 원인을 제공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심야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법적으로나 국민 감정상 적절하다 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을 둘러싼 측근의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이라면 반드시 국민이 납득할만한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해제하며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농단, 예산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이런 요청은 계엄선포 전에 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야당에게 탄핵의 명분만 안겨준 이번 사태는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따른 판단 오류가 민주적 리더십에 어떤 위기를 초래할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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