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영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을 삼아 공과 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왕상10:9)

나아만 장군의 엄청난 믿음

솔로몬 왕의 지혜와 통치가 워낙 출중하다는 소문을 들은 남방의 시바 여왕이 정말로 그런지 확인 차 요즘 식으로 말해 이스라엘에 국빈방문을 했습니다. 그녀는 평소 궁금했던 사항을 솔로몬과 일대일로 문답해본 결과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한 후에 여호와가 당신을 기뻐하고 이스라엘에 공과 의를 행하게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의 믿음이 아주 좋아서 하나님이 큰 복을 부어주었다고 오해하는 신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본문 같은 구약성경 구절을 해석할 때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처럼 특정 사건을 평서문 형식으로 진술하는 이야기(narrative)의 경우 그 모든 구절에 영적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봐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이 여호와가 솔로몬을 기뻐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이상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솔로몬을 직접 칭찬한 그분의 말씀이 아닙니다. 시바 여왕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솔로몬에게 무슨 의도로 그 말을 했는지부터 잘 따져봐야 합니다. 또 그 의도가 과연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언어를 통해 계시된 인간의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문학적 기법이 다 동원된 인간의 저작입니다. 당연히 국어 공부하듯 어떤 말씀이든 문장을 구분해서 수사학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듣는 자가 누구인지, 왜,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반응과 결과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시바 여왕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려면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과 관습 등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고대에는 나라와 민족마다 고유의 신들이 있었고 그 나라나 백성 개인의 흥망성쇠를 그 신들이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도 각국의 군사력에 따라 갈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신이 더 강한지에 달렸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승전국은 패전국의 신상을 파괴하거나 자기들 신전에 기념품으로 전시해 놓습니다. 블레셋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탈취해서 다곤의 신전에 갖다 둔 것이 그런 예입니다.(삼상5:2)

시바 여왕은 분명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과 솔로몬의 신이라고 전제한 것이지 본인이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를 통해 여호와의 권능으로 문둥병을 고침 받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여호와만 섬기기로 즉, 이방 우상종교에서 유대교로 실제로 개종한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왕하5:15-19)

그녀는 또 “여호와께서 영영히 이스라엘을 사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여전히 이스라엘만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나아만처럼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왕하5:15)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의 이 고백은 당시 상황에 비추면 엄청난 의미를 지닙니다.

지구상의 민족마다 고유의 신들이 있고 그 신들의 경쟁이 세상만사의 원인과 결과라는 믿음이 완전히 틀렸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이 아예 존재도 하지 않고 모든 우상 신들은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한 명의 예외 없이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해야만 하고 본문의 시바 여왕도 자기처럼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도 나라나 문화마다 고유의 종교가 있고 세계적인 종교도 추구하는 내용이 같으니까 자기에게 합당한 종교를 택하여 믿으면 된다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기독교만 제외하고 모든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개신교에서도, 어쩌면 이미 다수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동의하고 있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나아만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하고 순전한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넘지 말라

모든 성경해석에서 그래야 하지만, 특별히 사건을 진술하는 이야기에선 더더욱 본문이 말하는 바를 넘어서선 안 됩니다. 시바 여왕은 유대 민족의 신인 여호와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게 했다고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 의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로 대입해선 안 됩니다. 솔로몬으로 인해, 본인이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스라엘이 분열과 타락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이 명확하게 진술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범위를 넘지 않고 그나마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 적용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영적 진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잘 믿으면 현실적 복을 준다는 시바 여왕과 고대 사람들의, 아니 지금도 그렇게 가르쳐지고 있는 믿음은 완전히 틀렸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교회에 첫 발을 내딛는 자의 대부분이 현실적 고난에서 구원 받으려는 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교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도 먹고 살기가 아주 힘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구호가 경제개발시기와 맞물려서 강력하게 어필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시 많은 한국 교회들이 캠페인처럼 내세운 그 말씀 또한 잘못된 해석으로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문자적 의미대로 믿고 현실적 고난에 처해있는 많은 이들이 교회 문을 노크했습니다. 완전 불신자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된 제가 제 발로 교회로 찾아간 아주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경제가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발달해 먹고 살 것이 풍요롭게 된 최근의 한국 사정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이 교회를 찾기는커녕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 교회 성도들의 스캔들 부정 등이 중요 원인입니다. 성경적으로 판단해 볼 때 비록 그런 하자들이 있음에도 교회들이 그것들을 뛰어넘어서는 초신자들로 믿음에 견고히 설 수 있을 만한 의미와 가치를, 말하자면 참 생명의 복음을 제공하지 못한 탓이 더 큽니다.

본문에서 배워서 적용해야 할 두 번째 영적 원리는 이와 동일한 맥락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개인적인 믿음에 대해선 성경은 침묵하고 있어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믿되 인본주의적 색채가 강했고, 시바 여왕은 자기 민족 신들을 숭배했을 것이라는 점 말고는 말입니다.

그런 미개한 신앙을 지녔던 시바 여왕이 어쨌든 솔로몬이 자기가 믿는 신의 기쁨을 받고 있고 그 결과를 현실정치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 하나만은 인정해주었습니다. 이는 어떤 종교를 믿든 그 신자가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특정 종교를 믿는 표시가 나지 않아서 남들이 아무리 살펴봐도 모를 정도이면 구태여 그 종교를 믿을 이유는 없습니다. 가뜩이나 믿음이 바로 현실형통이라는 방정식이 통할 때에는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시바 여왕에 비추면 오늘날의 기독교 신자들은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를 믿는 신자라는 사실을 구태여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먼저 알아봐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신자인 것을 알고는 “역시 예수 믿는 분이라 어디가 달라도 많이 다르시네요!”라는 칭찬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금은 예수 믿는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교회 다닌다는 사실조차 쉬쉬하고 숨겨야 할 판국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려면?

교회와 목회자와 다른 성도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변명해선 안 됩니다. 그럴수록 참 생명을 지닌 참 신자답게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먹든 마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식사 기도를 빠트리지 않는 식의 종교적 과시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무엇을 먹든 마시든”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의 모든 세밀한 부분에서도”라는 뜻이지 음식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롬14:17,18) 본문에서의 뜻은 우상에 바친 고기를 먹는 문제로 교회 안의 형제를 비방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확대 적용하면 세상 앞에 신자다운 모습을 종교적 양태로 드러내기보다는 반드시 서로 화목하고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특별히 시바 여왕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 본인부터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 안에서 평강과 희락을 맘껏 누리고 있고 그것을 제 삼자가 보고서 생생하고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도저히 걱정 염려가 끊이지 않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혀 있기에 평강과 희락을 유지해야 합니다. 세속의 쾌락 죄악과는 완전히 담을 쌓은 채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볼 때에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한지 너무 부러워서 닮고 싶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의 시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한 칭찬의 결론을 보십시오. 바로 그런 뜻이지 않습니까?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10:8)

작금 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사탄의 농간을 받고 있는 세상이 죄로 타락한 탓으로, 일부 교인과 목회자의 비성경적인 탈선으로만 돌려선 안 됩니다. 고난에서 구원 얻으려고 교회를 출석한 사람들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 이유부터 잘 따져봐야 합니다.

몇 가지로 추정해볼 수 있는데 우선 본인부터 고난에서 건져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고난들이 겹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아주 믿음이 좋은 신자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현실에서 크게 형통 않는 자들이 대분이고, 간혹 형통해도 그 성품과 삶의 질이 존경 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현실적 형통과 도덕적 선함 둘 중 하나라도 달성했거나, 심지어 둘 다 성공한 신자라도 여전히 순전한 평강과 희락은 없어보였던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결론을 내립니까? 수십 년 성실히 신앙 생활한 결과가 저 정도라면 계속 교회 다녀야 할 필요가 있을지 회의가 강하게 들 것입니다. 그 회의의 속마음을 추적해 들어가면 비록 그들이 현실 고난을 해결하려고 일차 교회에 나왔지만 정작 교회에 바라는 것이 그와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재정적 궁핍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도덕적 성결 외에 더 근원적이고도 궁극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의 교회 탈출 현상이야말로 오히려 불신자들에게 교회가 참 복음을 가르치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맛보게 해줄 좋은 기회가 되는 것 아닙니까? 정말 단 한 명이라도 온전히 예수 십자가를 구원 안에서 주님을 따라가며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신자가 있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주위에 아주 조금씩 천천히 번져 나가지 않겠습니까?

기독교가 여러 스캔들로 지금보다 더 쇠퇴하든, 그래서 모든 이들이 소위 개독교를 완전히 외면하든, 하나님은 오직 한 명의 남은 자를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은 모든 신자와 그 인생을 그 한 사람과만의 일대일 개인적 관계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신자들도 그런 은혜 가운데 있다고 확신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분이 당장 직접 나타나 일대일로 대면해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럴 수 있으면 세상 앞에도 자연히, 부끄럽지 않게, 아니 얼마든지 자신 있게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신자를 통해 세상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교회에서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다시 참 생명의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들리게 하는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책임이자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해서 솔로몬처럼 세상에서도 형통하는 신자가 될 것이 아니라, 나아만 같은 신자로 헛된 우상을 쫓는 세상 앞에 당당히 그것이 틀렸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019/6/29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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