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기관사, 여자의용대, 노무대 등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희생
당시 마크 클라크 유엔총사령관 “전쟁의 절반을 노무자들이 치러”

 

호국전시관 1층에 설치된 조국 수호의 불꽃 조형물
호국전시관 1층에 설치된 조국 수호의 불꽃 조형물

이른바 군번 없는 병사들은 유격대원뿐 아니라 학도의용군, 애국단원, 노무대, 징용, 호국대원, 방위군, 공작원, 첩보원, 문관, 간호사, 의용경찰, 의용소방대원, 철도원, 선원 등 다양하다. 나중에 군번이 부여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민간인이다. 서울과 대전 현충원에 1만 5천여 명(유격 5,403명, 노무 1,048명, 반공청년 625명) 등이 있으며, 대부분 위패도 모셔져 있다.

 

호국전시관에는 추모실과 전시실이 구성되어 있다. 1층에 들어서면 정면에 조국 수호의 불꽃 조형물이 보인다. 또 철도기관사, 여자의용대, 노무대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활약상을 담은 전시물이 있다.

철도기관사의 분투는 지상군으로서 가장 먼저 전선에 투입된 미8군 제24사단과 관련이 있다. 사단장 월리엄 딘 소장은 전투경험이 많은 스미스 중령의 대대를 주축으로 540명의 특수부대를 편성하여 부산에서 가장 먼 곳에 저지선을 구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1950년 7월 5일 스미스 부대는 오산 죽미령에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을 맞아 6시간의 사투 끝에 150명 전사자와 사상자를 내고 영동으로 후퇴했다. 7월 19일 미 24사단이 대전전투에서 대패하고 사단장 딘 소장이 실종되었다. 딘 소장은 군정 하의 군정장관을 맡았기에 한국의 지형에 밝다는 이유로 미군의 선봉에 섰다고 한다.

미군은 30여 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여 구출 작전에 나섰지만, 적의 전선을 뚫고 북상할 수가 없었다. 이때 대전 철도국 소속 김재현, 현재영, 황남충 기관사는 대전이 점령되던 시점에 영동역에서 군수물자 후송 작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딘 소장 구출 작전에 참가하여 옥천 이원역에서 증기 기관차를 몰고 대전으로 향했다.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대전역에 도착하였지만 딘 소장을 찾지 못하고 적진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대전 남쪽 판암동 산기슭에서 북한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 김재현 기관사가 8발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현재영 기관사가 운전대를 잡았지만 그 역시 왼팔에 관통상을 입었고, 황남호 부기관사가 운전대를 잡고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탈출 과정에서 27명의 특공대원이 전사했다.

딘 소장은 산속을 헤매다가 적의 포로가 되었다가 1953년 포로 교환으로 귀환했다. 세 기관사에게는 미 국방장관의 특별 민간인 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김재현 기관사는 철도인 최초로 서울 현충원 제7묘역(장교묘역)에, 현재영 부기관사는 대전 현충원 장병묘역에 안장되었다.

호국전시관은 여성들의 활약도 보여준다. 여자배속장교, 여자의용군, 여자해병, 여자항공병, 육·해·공 간호장교, 여자학도의용군, 여성유격대원, 민간간호사 등 2,400여 명이 6.25사변에 참전했다. 1948년 8월 육군간호장교 31명을 시작으로, 1949년 4월 해군간호장교 20명이 임관했다. 6.25 기간 중 664명이 추가로 선발되어 참가하였다. 1949년 2월 서울 시내 여자중학생 15명이 공군여자 항공대로 선발되었다.

1950년 8월 제주도에 주둔하던 해병대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할 병사를 모병하자 3천여 명이 지원 입대하였는데, 그중 126명이 여학생이었고 200여 명의 여자학도 의용군이 지원하였다. 간호사범학교와 강릉여중생 50여 명은 국군을 따라 청진까지 북진하였다. 1950년 9월 부산에 육군 제2훈련소에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되어 1천여 명이 훈련을 받고, 1951년 1월 전방에 배치되었다. 낭자군으로 불리던 이들이 여군의 모체가 되었다.

노무대는 35~45세의 남성 중에서 선발했지만, 실제 10대부터 50대까지 20만 명 이상이 참가하였다. 산악을 오르내리며 지게로 식량과 탄약을 운반하고 부상병을 후송했다. 정식 명칭은 한국 근무단이었지만, A자를 닮은 지게를 보고 A특공대, 지게부대라고도 했다. 노무대의 헌신에 감동을 받은 유엔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 육군대장은 전쟁의 절반을 노무자들이 치렀다고 칭찬했다. 이들은 서울 현충원 제25번 묘역에 모셔져 있다.

 

이범희 목사
이범희 목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 참전 여군사는 간호장교 664명의 명단을 정리했다. 그중에 오금손 대위는 광복군에 이어 민간간호사로 참전하여 현지 임관하였고, 6.25전쟁에 이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한 김필달 대령 등이 있다. 군의관으로 활약한 박영하 중령과 간호장교 전증희 대위는 전쟁에서 만나 부부가 되고, 1956년 전역하여 을지 재단을 설립하였다.

 

이범희 목사(6.25역사기억연대 부대표, 6.25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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