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미션연구센터 연구강사인 사라 아프샤리(Sara Afshari) 박사의 기고글인 ‘로잔 4차 대회와 박해: 기독교 고난에 대한 신성하고 공동체적인 이해를 향한 비판적 성찰’(A response to Lausanne 4: from experience, persecution is both sacred and communal)을 최근 게재했다.
이란 출신의 아프샤리 박사는 엔드버러 대학교에서 미디어 종교 및 문화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저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한국 인천에서 열린 제4차 로잔대회는 기독교 선교에 대한 현대적 도전, 특히 박해 문제를 다룰 중요한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이슬람권 출신 개종자로서, 박해가 일상인 국가에서 온 저는 이 대회를 통해 로잔 운동과 복음주의 세계가 박해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신학적, 선교적 한계를 보았다. 이 글은 대회에서 박해를 다룬 방식을 비판하고, 교회 내 고난의 신성함과 공동체적 차원을 강조하는 대안적 신학적 비전을 제안하고자 한다.
로잔과 박해: 좁은 시각
제4차 로잔대회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 중 하나는 박해를 감정적인 호소로 축소하여, 주로 복음 전도나 기독교인 피해자로 묘사한 점이었다. 대회는 분명 박해 문제를 다루려 했으나, 논의는 종종 박해받는 기독교인을 희생자 또는 교회 성장의 도구로 묘사하는 익숙한 틀에 빠졌다. 이러한 접근은 박해를 상업화할 위험이 있으며, 기독교 신학에서 고난이 지닌 신성하고 공동체적인 본질을 간과한다.
제가 직접 박해를 겪으면서 본 바에 따르면, 특히 개종자들의 고통을 교회 성장 또는 이슬람권을 악마화하는 내러티브로 활용하려는 불편한 경향이 있다. 로잔에서도 일부 이야기는 박해를 복음 전파나 교회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박해가 복음화 마케팅 도구로 축소되었고,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신성한 행위로 인정하기보다는 개인의 스토리로 소비하도록 장려되었다.
박해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신성하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 증언할 사명을 받았다. 그레고리 대교황이 강조했듯이, 순교는 단순히 개인의 고통이 아닌 전체 신앙 공동체가 함께하는 증언이다. 박해의 신성함은 또한 성찬식과 연결되어 있다. 성도들의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결합되어 세상의 구속을 위해 헌신되는 것이다.
제4차 로잔대회에서 간과된 핵심 신학적 통찰 중 하나는, 박해는 개인적 경험이 아닌 교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저의 박해 경험을 돌아볼 때, 이는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제가 투옥되고 학대받았을 때, 저를 지탱해준 것은 교회였고, 교회가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공동체적 차원, 특히 성령의 역사까지 포함된 박해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때, 그들은 박해를 내 인생의 고립된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박해는 교회 전체의 경험이다. 박해는 공동체적 경험이기에,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 역시 이를 인식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 연대 안에서 성령은 개인과 신앙 공동체를 하나로 묶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게 한다.
선교적 위기: 증언에서 상품으로의 전환
로잔과 복음주의 교회의 박해에 대한 또 다른 신학적 우려는, 박해를 넓은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한 점이다. 대회는 주로 박해를 복음 전도의 렌즈로 보고, "타자의 개종"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기에, 박해의 신성한 본질을 증언으로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이와 같은 증언의 좋은 예는 이집트의 콥틱 교회에서 볼 수 있다.
이란과 같은 지역에서는 정치적 환멸에 대한 반응으로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지만, 교회는 이러한 개종자들이 적대적 체제와의 대립을 넘어 공동체 형성과 신학적 교육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복잡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로잔은 이러한 중요한 선교적 질문을 다룰 기회를 놓치고, 박해를 이야기로 소비할 뿐, 이를 실제로 살아가고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할 현실로 보지 못했다.
박해를 단순히 복음 전도의 도구나 후원을 위한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신성한 증언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교회가 박해에 대응할 때, 추상적인 신학 개념보다는 고통받는 이들과의 깊은 성육신적 연대가 있어야 한다. 이 연대는 개인뿐 아니라 교회와 함께하는 것이며, 박해는 세상을 향한 교회의 집단적 증언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신학적 실패와 전체적 대응의 필요성
로잔이 박해의 깊은 신학적 차원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한 것은 복음주의 신학의 더 넓은 위기를 반영한다. 복음 전도를 신학적 성찰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드러났으며, 특히 루스 파딜라의 연설 이후 사과 사건에서 이러한 긴장감이 드러났다. 한때 신학적 교류와 복음주의의 일치를 위한 플랫폼이었던 로잔 운동이 이제는 독자적인 신학적 성향을 가진 조직으로 변화하면서 비서구권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의 실생활에 의미 있게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회는 또한 박해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서구 중심의 편견을 드러냈다. 다수 세계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의 경험은 종종 “박해받는 자” 대 “박해하는 자”라는 이분법적 역학으로 단순화되었다. 이러한 좁은 초점은 이러한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매일 직면하는 넓은 체계적 요인과 교회의 미래를 반영하는 변혁적 선교적 대응의 필요성을 간과한다.
박해에 대한 신성하고 공동체적인 비전을 위한 호소
신학적, 선교적 교착 상태를 넘어서기 위해, 교회는 박해를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나 이야기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증언으로 바라봐야 한다. 박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교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연대를 형성한다. 성령은 박해받는 이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위로자일 뿐 아니라 교회가 억압과 폭력에 맞서 진리를 증언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박해를 개인적 경험이 아닌 교회의 공동체적 현실로 볼 때,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 되는 삼위일체의 완전한 교제를 반영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박해받는 자들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가 되며,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의 힘을 세상에 증언한다.
교회의 박해 대응은 이러한 신성하고 공동체적인 비전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감정적 호소나 고통의 상품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통해 박해받는 이들과의 연대와 신학적 성찰을 통해 고통, 회복, 희망의 현실에 진정성 있게 접근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신성한 행위다. 박해는 교회가 함께 지는 십자가이기 때문에 공동체적이다. 현대 세계에서 박해의 도전에 직면하는 교회는 이러한 신성하고 공동체적인 비전을 되찾아야 하며, 박해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복음의 희망을 증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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