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철학회(회장 김종걸)가 지난 2일 숭실대학교 미래관에서 ‘기독교 인문학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주제로 2024 가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홍기숙 교수(숭실대)가 ‘「성 바울」을 통해 본 알랭 바디우의 주체 이론’ △정제기 교수(영남대)가 ‘칸트 철학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의미’ △김종원 교수(나사렛대)가 ‘기독교 윤리학에서 사랑과 정의’ △이창우 대표(카리스아카데미)가 ‘키르케고르 작품에 나타난 기독교 윤리의 본질로서의 채무의식’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알랭 바디우의 「성 바울」을 통해 보는 주체 이론에 대해
먼저, 홍기숙 교수는 “「성 바울」은 바디우의 철학적 논의에 따라 바울의 기독교 교리를 재구성한 저서”라며 “바디우의 진리, 주체, 사건의 철학적 개념들이 바울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을 통해 주체로서 복음을 전하는 충실성과 기독교적 진리의 과정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그리고 있는지는 대해, 그리고 그 구체적인 논의들 예컨대 죽은 율법과 살아있는 복음의 차이, 주체의 분열, 기독교적 주체의 진리로 향한 강제성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교리들에 대한 분석 등은 일반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게 한다”고 했다.
또한 “ 바울의 사상을 현시대의 새로운 논점에 의해 재구성했다는 철학적 신학적 의의도 충분히 갖는다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글 중간마다 언급했던 비신앙인으로써의 한계 즉 삼위일체를 부정한다거나 종말론적 신앙관을 부인하는 문제 등은 기독교 교리에 서서 잘 분별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궁극적으로 바디우에게서 주체 개념은 주체화(subjectivation)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뛰어든 그곳이 진리의 장소인지 명확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사후적 진리 과정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주체는 자신을 추동하는 강한 힘 강제성 에 이끌리며 진리를 완성해 나간다”며 “바디우에게 그리고 바디우에 의해 그려지는 바울에게 진리란 사후에나 소급하여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주님 앞에 섰을 때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주체의 현상에 관한 기술은 결국 주체의 식별불가능성에 의해 막막한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이러한 수동성은 동시에 앞서 말한 강제하는 힘으로 사랑하게 하고 소망을 그 힘으로 갖게 하는 능동적 입장을 갖는다. 즉 바디우의 주체 개념은 주체의 자발적 능동성과 소극적 수동성이 동시에 겹쳐지는 이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디우의 생각처럼 그날은 도둑처럼 오겠지만 바울은 깨어있는 자들에게 그날은 결코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고 덧붙인다”며 “무화과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신랑이 오는 그날의 혼인 잔치는 기름이 준비된 다섯 처녀에게는 결코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바디우의 바울과 바울의 텍스트를 통한 보편주의와 진리 주체에 대한 접근은 바디우의 독특한 철학적 논점에 근거하여 분석되고 있으며 그러한 바디우의 논변에 바탕을 둔 이 시대를 관통하는 몇 가지 특이한 논점들은 우리의 시선을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며 “‘차이’와 ‘다름’만이 주장되고 있는 현대 사유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선언하고 명명해야 하는 진리 가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옳음과 윤리가 사라지고 있는 이때 아직도 대안을 찾고 있는 우리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임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칸트, 하나님 나라의 의미 인정한 철학자
이어 두 번째로 발제한 정제기 교수는 “칸트는 현실에서는 결코 실현 불가능한 최고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도덕신학을 도입한다는 사실 즉, 지성계와 감성계 모두를 통치하는 전능한 도덕적 신을 요청한다”며 “이러한 도덕적 신은 도덕법칙과 자연 인과성의 지배를 받는 지성계와 감성계 모두를 창조한 창조자이자 동시에 통치자로서 제시된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도덕적 신을 요청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우리는 도덕적 신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세계가 즉 최고선이 실현된 세계가 곧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비록 도덕철학의 영역에서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통해 아프리오리한 종합명제로서 도덕법칙을 입법한 입법자로 제시된다고 할지라도 종교철학의 영역에서 칸트는 도덕법칙과 도덕적 인과성의 원리 자체를 창조한 창조주가 도덕적 신 즉 하나님으로 사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한다”고 했다.
이어 “칸트는 자연 인과성이 지배하는 감성계와 도덕적 인과성이 지배하는 지성계 모두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존재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 역시도 겸손하게 인정한다”며 “이는 결국 칸트 철학에서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간주되는 도덕법칙이 온전히 실현된 세계라는 것 그리고 도덕법칙에 상응하는 행복이 충분히 보장된 세계라는 것 그리고 이 나라가 지성적 도덕세계의 차원에서는 이미 임했지만 아직 감성계의 차원에서는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은 칸트가 전통적인 신학에서 설명하는 하나님 나라의 의미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나라임을 인정한 철학자였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 기독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가페의 윤리학’
이어 세 번째로 발제한 김종원 교수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의로 대표되는 도덕적 진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불변하고 보편타당하게 주어진 것”이라며 “또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할 만큼 아가페 사랑은 기독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따라서 기독교 안에서 정의와 사랑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양립 가능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온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사랑과 정의는 갈등은 일으키며 결국 우리로 하여금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데 아가페 윤리학의 입장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 정의보다는 사랑을 선호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아가페 사랑이 강조된다고 정의의 요구가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정의의 요구가 있기에 용서가 가치 있고 십자가의 희생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의 요구 그 너머 타인의 선 자체를 바라보고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아가페를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회복을 위한 윤리학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가페의 윤리학은 일인칭적 관점의 윤리학이다. 타인에서 자기희생을 강요하거나 타인의 정의가 어그러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며 “아가페의 윤리학은 전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윤리적 대답이다. 정의는 존재하고 정의의 요구는 지켜져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의를 포기하면서까지, 내 몫을 포기하면서까지 타인에게 아가페를 실천해야한다는 것이 바로 아가페의 윤리학이 말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했다.
또한 “아가페의 윤리학은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를 섬기는 자로서의 주체성 그리고 데리다가 말하는 무조건적인 환대 개념과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진 현재 사회를 고려해 볼 때 자기희생을 중심으로 하는 아가페의 윤리학이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더욱 요구된다”고 했다.
◇ 키르케고르의 채무의식에서 생겨난 과제 ‘사랑’
다음 마지막으로 발제한 이창우 대표는 “키르케고르의 작품에서 말한 의무인 사랑은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영원의 의무로, 채무의식에서 생겨난 과제”라며 “따라서 그는 죄책으로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니체와 키르케고르는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니체는 양심의 가책에 따른 형벌을 병으로 인식한 반면 키르케고르는 이것을 ‘약’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라며 “다시 말해 형벌을 약으로 인식할 때 그리하여 그가 벌을 받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유익하다고 믿는다. 바로 이 지점이 니체와 키르케고르의 분기점”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니체 말마따나 이 잔인함이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형벌 에 길들여지지 않는 크리스천, 그리하여 마치 사도 바울처럼 채찍질을 당하고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나게 되면, 그때 새디스트는 기쁜 것이 아니라 분개하게 된다. 따라서 새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환상이 궁합이 될 수 없듯 니체와 키르케고르의 채무의식에 대한 설명은 무한히 다르다”고 했다.
아울러 “채찍질을 당하고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난 바울은 마조히스트와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맞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벌을 유익한 것으로 믿고 기뻐할 수 있는가? 이 기쁨이 마조히스트적 기쁨과는 어떻게 다른가”라며 “바로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설명하고자 하는 죄책으로 고난당하는 기쁨”이라고 했다.
한편, 행사는 발표회 이후 신응철 교수(숭실대)의 사회로 종합토론, 성신형 교수(숭실대)의 기독교학문분야 연구윤리교육 특강 순서로 모두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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