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는 정서적 기쁨을 흡족하게 누리고 있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을 때,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받았을 때,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구르에서 라흐마니코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1위를 했을 때 그랬다. 이번에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정서적 기쁨의 차원을 넘어 더 깊은 흥분과 감동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강 신드롬”을 겪고 있다. 출판계는 한강의 대표적 작품을 비롯한 많은 도서들이 한 주간 동안 100만 권 이상 팔려나갔다고 한다. 언론마다 독서 열풍이 다시 일어났다고 문화계 반응을 전하고 있다. 놀랍지 않는가.
처음으로 한강의 작품을 접한 건 <채식주의자>였다. 연작소설로 구성된 작품이다. 상상력이 뛰어나고 매우 환상적인 요소가 전 작품에 깔려 있었다. 소설은 역사 기록물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수많은 가능성을 예측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창조 작업이다. 한강은 그런 특징이 유별나게 두드러진 작가이다.
지난 주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이 작품이 주는 강한 인상은, 먼저 중학생, 여고생, 여공 등을 등장시켜 소년처럼 연약하고 아직 풋내 나는 여린 눈으로 그날의 잔학상을 고발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소년의 혼이 시신 밖으로 나와 수많은 주검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지켜보며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날의 피해 범위가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참혹함을 정밀하게 처연하게 조명한다.
그리고 십 년쯤 지나 그날의 피해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트라우마와 상처를 지닌 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따라가게 한다. 세상이 기피하는 시선을 어떻게 헤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쫓아가게 한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음을.
작가의 시적이면서 간결하고 유연한 문체는 쉽게 책을 읽게 했다. 한국인의 한을 이토록 처절하고 아련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해외에서도 이념이나 철학의 벽을 넘어 공감과 호응을 받고 있나 보다. 세계인이 충분히 우리의 역사적 고통과 고뇌에 스며들게 하나 보다.
한강은 문학의 힘을 다시 증명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도 밝혔듯이 자신의 문학적 배경에는 한국문학이 있었음을 말했다. 한강은 한국문학의 결실이요 한국문학의 힘이다. 한국 역사와 토양이 한국문학의 힘이었듯이.
필자에게 소년 시절 영향을 미친 문학의 힘은 시인이었던 국어 선생님의 세계였다. 매주 대학노트 한 권씩 습작 시를 쓰게 했다. 한국단편문학과 세계단편문학을 통해 문학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대학시절 생각을 풍요롭게 해 준 <장군의 수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사람의 아들>, <만다라>, 그리고 군 복무 시절에 접했던 <젊음, 비탈에 서다>, <데미안>, <좁은 문>, <부활>, <닥터 지바고>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역사와 사람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 <토지>, <상실의 시대>, <파친코> 등을 들 수 있다.
문학의 힘, 좀 더 확대해 문화의 힘은 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문화는 시대마다 그 시대를 채색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운명을 좌우할 만큼 영향을 끼친다. 문화의 핵심에 가까운 문학의 힘이 세상을 움직인다. 그 힘의 강력함이 더 가깝게 다가왔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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