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높은 곳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서워서 살이 떨리는 현상을 경험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수직에 가까운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네 발로 마음껏 올라가고 뛰어다니는 산양이 신기하기만 하다. 산양은 숨 막히는 절벽도 척척 올라간다. 높은 바위산에서 절벽을 타는 산양의 모습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3m 높이도 폴짝 뛰어다니고, 90도에 가까운 바위 절벽도 척척 올라가 산 정상에 다다른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는 어린 산양조차도 엄마 산양을 따라 절벽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창조주 하나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산양이 절벽을 잘 타는 비밀은 산양의 발에 있다고 한다. 산양은 암벽에 난 조그만 틈에 뾰족한 앞발굽을 밀어 넣어 몸을 지탱할 수 있다. 발굽의 둘레가 튼튼해 바위틈에 발굽이 끼어도 발굽이 부서지지 않는다. 단단한 발굽 둘레는 안쪽의 부드러운 발바닥에 상처가 나는 것을 막아준다.
높게 올라온 발 뒷굽은 경사진 곳에서도 몸이 뒤로 밀리지 않도록 막아준다고 한다. ‘중력의 법칙’마저도 가뿐하게 거슬러버리는 듯하다.
왜 산양은 편안한 평지를 놔두고 가파르고 위험한 바위에 사는 걸까? 가파르고 바위가 많은 높은 산이 산양이 살기에 안전한 장소이기 때문이라 한다. 절벽을 잘 오르지 못하는 맹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양은 가파른 절벽이나 바위가 험하게 널린 곳을 지나 산 정상까지 아주 곧잘 올라간다.
대신 산 정상의 매서운 추위와 거센 바람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온몸은 단백질로 된 두꺼운 털로 덮여 있다.
봄·여름에는 산 아래로 내려오는데, 두툼하던 털이 벗겨지면서 몸이 가냘프게 작아진다. 대신 봄·여름에 난 아삭아삭한 풀과 잎을 먹으며 살을 찌운다. 가을에는 열매도 먹고 털도 자라 일 년 중에 덩치가 가장 커진다고 한다.
‘유각무치’(有角無齒)라는 말이 있다. ‘강한 뿔을 가진 짐승은 이빨이 없다’라는 말이다. 이는 하나의 생물이 모든 것을 두루 갖추는 복을 받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예로 매우 흡사하게 생긴 노루는 뿔이 있고 이빨이 없는 반면, 고라니는 뿔이 없는 대신 엄니(큰 이빨)를 갖는다.
이런 사실을 관찰해보면, 땅의 모든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섬세하신 섭리와 솜씨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나는 산양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심이 너무도 감사하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도 ‘각기 그 종류대로’, ‘저마다의 다른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해두셨음이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에 ‘우연’이나 ‘목적 없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과 섭리 속에 창조되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세심하게 보호하고 배려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의 죄가 가득 차기까지는 ‘심판을 보류하시는 분’이시다(창 15:16). 이스라엘의 철천지원수 나라인 니느웨 백성들의 자녀들과 가축들까지 ‘아끼시는 분’이시다(욘 4:11). 이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세밀하게 계획하셔서 창조하신 작품들이다. 우주와 천체는 물론이요, 사람과 식물과 동물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그들을 설계하고 지으신 절대자의 의도와 목적이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다.
그분이 누구신가? 그분은 바로 성경 속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세상에 우연은 없고 ‘필연’만이 존재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을 지닌 채 보내졌음을 기억하자. 나 역시 하나님의 구체적인 섭리하심 속에 이 땅에 태어나 그분의 의도와 목적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그분의 형상대로 구별되이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대로 지금보다 더 멋지게 잘 살다가 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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