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100주년을 맞았다. 1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교회 일치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민주화에 기여해 온 NCCK가 지금까지 이어온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한국교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NCCK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24년 9월 24일, 새문안교회에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 당시 회원은 조선예수교장로회(예장), 조선미감리회, 조선남감리회( 현 기감) 등을 주축으로 국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여러 해외 선교부가 동참했다.
당시 창립 취지문에 나와 있듯이 NCCK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하며, 성령의 인도 아래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의 교회 연합기관이다.
일제강점기에 NCCK는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했다. 농촌 계몽운동과 절제운동, 기독교진흥운동 등을 펼치며 YMCA, YWCA 등과 연계해 활발한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1932년에 발표한 ‘사회신조 12개 항’은 인권보장, 민중차별금지, 아동노동 금지, 여성 교육, 공창 폐지 등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사회 개혁 실천 방안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NCCK가 대중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건 군사정권 시절 우리나라의 인권과 민주화에 기여한 부분일 것이다. 1974년에 발족한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인권 운동에 주력하면서 NCCK가 위치한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은 한때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불렸다.
NCCK가 인권 운동과 함께 보폭을 넓힌 게 통일 운동이다. 1984년 일본 도잔소 회의와 이어 1986년 스위스 글리온 회의에서 NCCK 대표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가 잇따라 만남으로써 평화 통일 열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남북 기독자 간의 모임이 도화선이 되어 2년 뒤에 이른바 ‘88선언’으로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발표된 것이다.
그런데 이 ‘88선언’이 한국교회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리라고는 NCCK도 차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해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를 범했음을 고백한다”한 NCCK의 죄책 고백이 가져온 당시의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88선언’이 한국교회 이름으로 선포된 것에 보수 진영의 반발이 컸다. 당시 회원 교단이 6개에 불과했던 NCCK가 분단의 책임이 공산 독재체제인 북한이 아닌 남한과 한국교회에 더 큰 잘못이 있다고 고백함으로써 한국교회 전체가 마치 이에 동의한 것으로 비치게 된 게 결정적 요인이다.
그 후 NCCK가 한국교회 통일 논의를 독점하는 데 위기를 느낀 교계 원로 한경직 목사 등 보수 지도자들에 의해 새로운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교회 일치와 연합을 목표로 창립된 NCCK가 한국교회를 보수와 진보로 명확히 나뉘게 하는 도구로 쓰이게 된 건 역사의 큰 오점이다.
그런데 NCCK는 최근에 와 더욱 큰 시련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100년 전 NCCK를 창립한 두 주축 교단인 예장 통합과 기감 내부에서 NCCK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고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탈퇴 여론이 비등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로 100주년 사업의 키를 쥐고 있던 전임 이홍정 목사가 중도 사임할 정도로 내부 진통이 컸다.
NCCK는 김종생 총무가 부임한 이후 그동안 논란의 중심이었던 인권위원회를 NCCK에서 분리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그렇다고 NCCK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완전히 거쳤다고 보긴 이르다.
NCCK는 교회 연합과 일치를 목표로 창립된 기관이다. 그런데 70~80년대 민주화 시기를 거치면서 어느새 인권운동가들의 집합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권 운동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차별금지법’ 논란으로 인권위원회 앞에 붙었던 NCCK 간판이 떼어지면서 그나마 있던 동력마저 사라진 느낌이다. 통일 운동도 한때 남북 기독자 간의 만남이 정례화된 시기엔 힘을 발휘했으나 남북 교류가 꽉 막히면서 활력을 잃고 말았다.
결국, 100주년을 맞은 NCCK는 사회적 의제 못지않게 교회 내 가치를 조화시켜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한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 연합기구였지만 이젠 그 위상을 유지하기가 버거워졌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와 보폭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한 데 그중 대표적인 게 동성애 이슈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냈던 인권위가 떨어져 나가면서 다소 어정쩡한 입장이 된 NCCK가 한국교회와 같은 목소리 내기를 주저할 경우 향후 갈등이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NCCK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88선언’의 뒤를 잇는 ‘한국기독교 사회선언’(가칭)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88선언’은 NCCK 내부의 긍정적인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정서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문제가 됐다. NCCK가 100주년을 기해 구상하는 선언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으나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다시 갈등하게 된다면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9개 교단으로 구성된 NCCK의 시급한 과제는 어떤 ‘선언적 가치’보다 한국교회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는 부단한 연합과 융화의 노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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