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박사
양기성 박사

사도 바울은 그의 13권의 책에서 강조하는 두 가지 내용이 나오는데, 하나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윤리도덕을 말하고 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그리스 및 로마에 나가 복음을 전하면서 도덕생활의 개선을 외쳤다. 당시 그리스나 로마는 동성애가 생활습관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동성애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동성애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는 없으나, 고대 근동지방에 횡행하던 바알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바알신은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 주는 팔레스틴지역의 신이었다. 농사 소출이 많아야 부를 이루어 잘 살게 된다는 믿음 때문에 바알신을 믿게 되었는데, 이것은 가정의 자식생산에도 적용이 되었다. 식구가 많아야 돈을 벌어올 수 있기 때문에 자녀를 많이 두려 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자식을 두기 위해 아내들을 몇몇씩 두었던 것이 한 예가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팔레스틴인들은 다산을 오용, 남용하여 불륜을 통해 자식을 많이 두려하기까지 했다. 이는 당시 풍습으로 보아 그리 큰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러한 풍습의 차원을 넘어 성적 타락으로 이어져 갔다는 것이다. 즉, 같은 성끼리 관계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대 동물과의 교접도 만연하게 되었다. 중동 일대의 고문서나, 벽화, 심지어 신전이라는 곳에 가 보면, 남자들의 성기가 길죽하게 뻣어나와 여기저기 인간과 동물에 접합되어 있는 그런 모양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만 봐도 매우 부적절한 행동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세가 츨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우상숭배 금지를 제1계명으로 두신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알신들을 타파하고, 우상숭배자들을 심지어 죽이라 하기까지 하셨다. 비이성적 행위들로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심에 반하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들과 차이는 말 할 것도 없고,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지존한 존재임으로 인간은 거룩한 존재자의 모습을 지키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련의 동성애 풍습들이 지중해 일대에까지 만연하므로 바울은 그 문화적 현상에 대립하여 동성애를 적극 비난하게 되었다.

동성애 행동들은 고대 근동일대에서만 존재헸던 것만은 아니다. 아시아권인 중국에서도 유럽 일대 만큼은 아니어도 동성행위들은 지역 마을마다 일어나기도 했다. 다행이 유교의 가르침 때문에 그리 사회문제화 되지는 아니하였는데, 아무튼 동양에서도 동성애는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망측한 행위”로 규정하였다.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을 마을에서 쫓아냈다. 하늘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입장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의 성은 출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반면, 서양은 쾌락을 성문제의 우선 순위에 둠으로 동성애가 서양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 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또 하나의 동성애가 일반화되어 가는 원인 중의 하나는 성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을 가지려는 자유주의 사조때문이다. 인간은 자유한 존재이므로 성적 면에서도 억압을 상징하는 순결이나, 자제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자유주의신학 사조논리 때문이며, 자유로운 인간이 도덕의 억제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야 되겠는가 라는 주장때문이다.

또 한 가지 21세기 신학계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현대 기독교계에 큰 도전으로서 진화론의 재등장이다. 유신진화론이 고개를 내밀어 또 다시 기독교 창조론을 무시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과학이 발달하여 이제는 과학주의 시대가 되었다. 진화론 자체가 인간 과학주의인데, 인간과학이 또 다시 신학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계가 인간 정신문화를 지배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과학의 발달도 그냥 단순히 “발전”이라 하면 되는데, “진화”라는 용어를 쓰고 해석을 한다. 모든 것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사물과 현상, 그리고 역사를 평가·해석한다. 진화론자들이나 유신진화론자들의 지적 오만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전혀 방어를 못하고 있다. 성경의 예언자적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엘리야같은 역할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유신 진화론이나 동성애 같은 세상 문화논리에 신학적으로도 목회자들이 전혀 비평을 못하고 있다. 옷을 훌렁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동성애자들의 행태에 대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당당히 그들의 잘못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신학적으로 체계가 서 있지 못하니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신의 경지에 이를 만큼 인간과학과 지성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신학하는 목회자들은 교리, 특히 진화론을 꺼내들어 논쟁에 불이나 지피고 있는 상황에도, 교회를 회사 운영하듯이 하는 데 정신이 없고, 건물 유지나 성도 지키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공부를 하지 않고, 교회 내 문화행사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세상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막고 지키고 있다 해도 소위 세속적 문화 대세로 인해 다른 한편에선 줄줄새는 바와 같다 할 수 있다.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이러한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혼란의 때 정신 바로차려야 은혜의 복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켜갈 수 있게 된다. 15세기에는 루터가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고, 18세기에는 웨슬리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하여 기독교복음을 다시 세웠다. 그런데 동성애 주창자 프랑스의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최초로 에이즈로 사망했으며, 유신진화론 주창자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뎅( 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은 카톨릭 신부로 예수회 교단에서 파직 출교 되었으며 죽기 전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고백하고 죽었다. 21세기 적그리스도는 동성애자들과 유신진화론자들임을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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