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의 은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은혜’(Grace)인가 보다. ‘전적인 은혜’(Total Grace) 말이다. 닉슨 대통령의 퇴임을 불러온 워터게이터 사건의 주역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을 한순간 순한 양 같은 의인으로 뒤바꿔 놓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주먹만 믿고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아오던 깡패 청년 김익두를 위대한 부흥사로 변화시킨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
미국에 ‘레이몬드 릴리’(Raymond Lily)라는 난폭하고 악한 흑인 청년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목사는 거추장스럽고 꼴 보기 싫은 존재였다. 그래서 어느 날, 목사를 때려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벽돌 한 장을 싸 들고 교회에 들어갔다.
목사는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설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목사의 말씀을 통하여 릴리의 마음을 뒤집어엎어 버렸다. 벽돌로 목사의 머리를 치겠다고 들어간 그는 그것으로 자기의 마음을 치게 되었고, 그 자리가 릴리 청년이 거듭나서 하나님을 발견한 놀라운 은혜의 자리가 되었다.
수년 후, 세계 최대의 자선병원인 시카고 쿡 카운티 병원(Cook County Hospital)에는 가난한 가운데 질병에 시달리거나 죽어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목사가 한 명 있었다. 그가 누구일까?
그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의 흑인 릴리 목사’로 불리운 과거의 악인 릴리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그 어떤 악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화살을 한 대 맞으면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사를 한 대 맞아야 한다. 한 대만 아니라 자주 자주 맞아야 한다. 그만큼 우리가 악하고 무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늘 자랑하는 목사가 한 명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보다 더 잘 전하는 이를 보질 못했다. 영양 만점의 최고의 식단을 준비해서 청중들이 먹고 행복해하고 감동받게 만드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는 설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필적할 이가 없을 만큼 출중한 사람이다. 그런 그도 알고 보니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공부를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형편없는 실력자였다. 운전면허 시험에도 10여 차례 떨어졌다고 한다. 내 모습과 흡사했다. 물론 나는 그만큼 공부를 못하진 않았고, 운전면허 시험에서도 미국과 한국에서 세 번 떨어졌을 뿐이다. 누가 봐도 장래성이란 보이지 않았던 그를 이 시대 모든 설교자와 목회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살다 보면 지칠 때가 있고, 모든 걸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아는 이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여러 명 된다. 엘리야 선지자처럼 거침없이 잘 나가던 하나님의 위대한 종도 하루아침에 자신이 처한 절박하고 위험한 형편에 눈이 머물러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호소할 수 있다. 나와 절친인 이 시대 최고의 선배 목사님 한 분도 괴로운 상황에 처해지자 하나님이 당장 천국에 데려가 주시면 좋겠다고 하소연한 일도 알고 있다.
사도 바울 역시 견딜 수 없는 환란으로 인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힘에 겨워했을 때(고후 1:8b-9a)도 있었다.
나 또한 생을 포기하고 모든 걸 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다. 그렇다. 은혜 외에는 방법이 없는 때가 온다.
초대교회에는 두 가지 기도가 있었다. 하나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The Lord’s Prayer)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기도’(The Jesus Prayer)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주기도’는 우리가 늘 암송하는 ‘주기도문’이고, ‘예수님 기도’는 성경에 자주 나오는 내용이다. “Lord Jesus Christ, have mercy on me.” 즉 “주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는 내용 말이다.
여름 더위가 쉽게 물러가지 않는다. 이런 날씨 하나만으로도 짜증과 불평이 유발될 때가 많다. 그런데 그와는 족히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 형편에 놓인 이들이 적지 않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들도 꽤 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고 불쌍히 여겨달라는 ‘The Jesus Prayer’를 즐겨해야 한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