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꿈의교회는 담임인 김학중 목사가 전도사 시절이었던 1992년 개척한 곳으로, 교회의 처음 이름은 ‘새안산교회’였다. 교회 측은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비전과 사명을 품은 교회가 되도록 기도했다”고 한다. 성장을 거듭한 교회는 2002년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레포츠센터를 건축하면서 이름을 ‘새안산레포츠교회’로 바꾸었고, 2007년 지금의 ‘꿈의교회’로 거듭났다. 현재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교회들 중 한 곳인 꿈의교회. 이 교회의 김학중 담임목사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전도의 타깃 ‘불신자’ ‘젊은이’ ‘남성’
구원, 영혼에만 필요한 건 아니더라!
-홈페이지 교회 소개란에 보면 개척 초기 ‘불신자가 좋아하는 교회, 젊은이가 좋아하는 교회,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교회’라는 모토를 걸었다고 하는데, 왜 이런 모토를 정하셨던 건가요?
“저는 처음에 개척할 때부터, 기존에 교회를 다니는 분들을 수평이동으로 데려오고 싶은 생각보다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아예 모토로 내걸어야, 정말 세상을 향해 교회의 문을 열겠다는 의미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에 가장 마음이 닫혀있고,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니, 불신자, 젊은이, 남성, 이렇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을 전도의 타깃으로 두면 되겠다는 생각에, 질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불신자가 좋아하는 교회, 젊은이가 좋아하는 교회,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교회’라는 모토가 생겼습니다.”
-‘레포츠교회’를 한국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소개도 있었습니다. 레포츠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왜 레포츠교회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안산에도 수영장이나 농구, 배드민턴 등을 할 수 있는 실내 체육시설이 많아졌지만, 2000년대만 해도 안산에 헬스클럽은 좀 있어도, 일반인들이 이용할 만한 수영장이나 실내 체육시설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동안 구원을 영혼의 문제로만 생각하다 보니,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까, ‘구원’이라는 게 영혼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육신에도 필요하겠더라고요. 지친 세상살이로 인해 영혼이 망가지는 만큼, 육신도 망가지는 사람이 많은데, 교회가 그들의 육신도 건강하게 해주면, 영혼도 함께 건강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수영장이나 체육시설이 지역적으로 거의 없다면, ‘교회가 먼저 육신의 건강도 돌보자, 전인적인 구원을 이루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바로 ‘레포츠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교회 전 공간을 헬스클럽, 수영장, 실내 체육시설로 활용하고, 주일에는 그 공간에서 예배하는 형태로 ‘레포츠교회’를 운영하게 되었고, 성공적으로 잘 운영했습니다.”
교인들과 본격 사역하려 했더니 IMF
힘들었지만 더 적극 대응하며 이겨내
전국적 교회 되면서 이름 ‘꿈의교회’로
-1992년 개척 후 32년 정도가 흘렀는데, 어려운 점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교회적으로 특히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IMF 시절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몇 년 간의 빌드업 끝에 이제는 교인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려고 다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그 계획을 다 뒤엎어야 했습니다. 우선 재정적인 타격이 너무 컸습니다. 전 국민이 다 어려운 상황에 있었지만, 특별히 안산은 공업단지가 있던 도시여서, 그 타격이 누구보다 빨리 직접적으로 왔습니다. 그 당시 저희 교인들 대다수가 다 블루컬러 노동자였는데, 하루아침에 실직을 하니까, 교회도 재정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실직하고 방황하는 교인들의 눈물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외쳤는데, 그 약속과는 반대로 간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고, 교인들의 삶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최신식 PC를 여러 대 구입해서, 교회 안에 직업소개소를 설치했습니다. 그때 교회만 오면 일용직이라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분들이 교회에 등록하셨습니다. 또 예배 중에 실직한 남자 성도들을 세워서 군가를 부르게 하면서, 어려운 시절도 이겨낸 경험을 가지고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퍼포먼스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런 마음을 교인들도 알아주셔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가장 기쁘고 보람되었으며, 은혜로웠던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저희 교회의 이름을 ‘꿈의교회’로 바꾸고 공포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 교회의 원래 이름이 ‘새안산교회’였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재정적으로, 심적으로 많이 지지해 주셨던 교회가 ‘새부천교회’였는데, 그 교회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교회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했고, 특별히 안산을 넘어서 심지어 서울에서도 오는 전국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역색을 빼고, 어디서나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고민과 기도 끝에 ‘꿈의교회’라는 이름을 공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부천교회’ 목사님께는 교회 이름을 새롭게 공포하기 전에, 상황을 말씀드리고 다시 한 번 감사의 표현을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꿈의교회’라는 이름을 공포한 사건을 통해, 저희 교회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동안 받은 은혜를 돌아보게 해주었으며, 전국적인 교회, 더 나아가 글로벌한 교회로 진출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교회 이름을 ‘꿈의교회’로 새롭게 공포한 이 사건이 제일 기쁘고 보람된 사건입니다.”
팬데믹 후 1년 지나서야 80~90% 회복
3040세대 현장 출석률 회복 가장 더뎌
코로나 없었어도 언젠가 마주할 어려움
-한국교회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교인 감소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고들 합니다. 목사님도 그렇게 느끼시나요?
“많이 느낍니다. 무엇보다 재작년(2022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나서 보여준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길어도 석 달이면 모든 교회가 최소한 현장 출석 면에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도 어느덧 1년쯤 지나서야 80~90% 정도 회복되었고, 어떤 교회는 여전히 70%의 회복률에 머물고 있습니다. 현장 출석률의 회복이 더디면서, 교회는 일할 동력을 많이 잃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교회가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게 드러나는 거죠.
그중에서도 교회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특별히 3040 세대가 현장 출석률의 회복이 가장 더디고, 심지어 많은 수가 교회를 이탈했다는 점입니다. 저희 교회도 3040 세대를 잡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그나마 이탈을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교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탈하는 발걸음을 막지 못해서 힘들어하더라고요.
확실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교회는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은, 코로나 사태가 없었더라도 언젠가 마주할 어려움이었다는 겁니다. 단지 코로나 사태가 그 속도를 빠르게 했을 뿐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
교리, 가르치는 수준 넘어 실천하도록
-팬데믹 이후 목회 변화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저는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로 현장만 중시하던 목회가 이제는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20년에 ‘C2C 미디어교회’를 선포하고, 온라인 목회를 시작했는데 1,600명이 등록해 있습니다. 현장교회와 미디어교회의 이중교적을 가진 분도 있지만, 특별히 교회에 소속되기를 원하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 현장교회를 가지 못하는 가나안 교인들이 이곳에서 믿음의 끈을 붙잡고 계십니다. 이제는 눈으로 보이는 사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넘어서, 온라인에서 얼굴 없이 만나는 사람들도 목회의 대상으로 보고, 온라인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로 그동안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지식적으로 알게 하던 목회를 많이 해왔다면, 이제는 교리를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서 그 교리를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이끄는 목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2천년 교회사를 보면 합법적으로,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시절이 이번 코로나 사태 말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에 숨어서 예배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일상에서 신앙적인 삶을 배우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실천적인 부분에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팬데믹 사태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이라도 일상에서 신앙인답게 사는 법을 고민하고 가르치고 실천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 교회에서만 잘 하면 된다고 착각
세상에서도 예수님의 모습 보여주어야
일상에서의 믿음으로 주님의 일꾼 되자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도 교세 감소 등 교회 위기론은 계속 대두됐었습니다. 한국교회의 힘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목사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저는 오래전부터, 한국교회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상과 괴리된 신앙생활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 중심’의 생활을 가르쳤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 참 중요하죠. 하지만 신앙생활을 교회에서만 잘 하면 된다고 착각하게 만들면서, 한국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노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교회 따로, 일상 따로 분리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한국교회가 두 가지의 손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 사태처럼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그것을 신앙적으로 극복할 만한 힘이 아예 없었다는 점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거죠.
또 하나는 사회가 기대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사회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더라고요. 정리해 보면, 올바름이 뭔지 보여주고, 사랑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지 못하니까 일상에서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겁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교회 안에서만 노는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과 동화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대신 세상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전도도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일상에서의 신앙을 고민하고 가르치고, 실천할 때입니다.”
-끝으로 한국교회 미래와 성도들을 위해 꼭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사를 보면, 어려운 시절이 많았습니다. 당장 사도행전의 이야기만 봐도,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어려움에서도 하나님은 교회를 지키셨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시절에도 시대를 살릴 일꾼을 세우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한국교회를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한 일꾼을 찾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안에 그 믿음이 필요할 때가 왔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그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에서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일꾼이 됩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김학중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 학사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를 졸업하고 호서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안산서지방 감리사를 거쳐 경기연회 제15대 감독을 지냈다. 굿프렌드복지재단 이사장과 꿈의교회 담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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