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박사
양기성 박사
지도자는 어떤 집단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자다. 그들은 어떤 집단을 안정과 번영, 그리고, 발전의 길로 이끌어 가는 능력을 가진 자다. 좀 더 냉정하게 지도자들을 분류해 보면, 집단이나 국가를 생명과 번영의 길로 인도해 나가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고통과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자도 있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는 위대한 영웅 칭호를 듣게 되고, 집단이나 국민을 고통과 근심에로 몰아가는 자는 소인배, 또는 역적이란 말을 듣는다. 여기에 몇몇 훌륭한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주전 8세기경, 그리스인 호메로스(일명 호머라 하기도 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인 일리아드(Illiad)와 오딧세우스(Odyssey)를 썻는데, 서사시(Epic Poems)로서 내용은 인간의 지혜와 용맹을 말하고 있다. 동양 중국의 “삼국지” 같은 것으로서 인간의 기쁨과 희망, 슬픔, 비애, 지혜와 용기, 지도력같은 부분에 교훈을 주고 있는 책이다.

그의 책 오딧세우스를 보면, 탁월한 지도자의 면모를 그린 이야기가 있다. 오딧세우스가 트로이를 멸망시킨 후 병사들을 이끌고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사이렌”이라는 바다 여신이 노래를 얼마나 아름답게 불렀는지, 지나가는 많은 배들이 자기들이 갈 곳으로 가지 않고 노래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가다가, 엄청난 크기의 바다소용돌이에 빠져 죽었다. 그 바닷길을 지나가야만 하는 모든 배들은 큰 위기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을 알고 있던 오딧세우스는 부하들에게는 사이렌의 음악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귀를 틀어막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자신이 말(지시)을 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입을 틀어 막게 한 후 배 돛기둥에 자신을 꽁꽁 묶으라 지시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그 싸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고 무사히 고향으로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병사들은 귀를 막았으니 음악소리에 유혹받지 아니하였고, 자신은 입이 틀어막혔으니 싸이렌음악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자 말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꽁꽁 묶여 있으니 손으로 지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맹인이었다 한다. 당시 문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맹인이었던 결과 자신이 직접 글로 남길 수 없어 자신이 구술하면 옆에 누군가가 받아 기록한 것이 오늘날까지 호메로스의 책으로서 내려 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오딧세우스의 병사들을 이끈 지도력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통해 오딧세우스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그의 탁월한 지도력을 볼 수 있다.

어찌 그 뿐이겠는가. 1세기 사도 바울은 그리스로 전도를 하게 되었다. 사도행전의 대략 끝 부분에 나오는 것으로서, 그는 죄수의 몸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전체 276명이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때는 해풍인 바닷바람이 세계몰아치는 철이었다. 그 역시 이것을 안 바울은 출항하면 생명이 위험하니, 어느 정도 겨울을 나고 출발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선주와 선장은 괜찮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바다 전문가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에 백부장은 바울의 권고를 무시하고 선주와 선장의 말을 듣고 출항했다. 결국, 뱃사람, 바다와 배의 전문인인 선장의 말을 듣고 출항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내용이 나온다.

바른 지도자를 만나면 살게 되고, 역사가 존재케 되나, 세상 인간의 지혜와 지식에 의존하는 지도자를 만나면 죽을 고생을 한다. 성경을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스스로 믿어 주장하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의의 사람들마저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성경 이사야 40장 28절에서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라 말하고 있고,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한이 없으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영향력을 받는 사람들의 말, 가르침, 또는 지도를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역사에서 배우는 일이다.

오늘날, 학문적으로 지도자 행세하는 자들이 많아 진리가 훼손될까 우려된다. 갖은 세속 사회의 철학, 과학만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 또는 실체로 보아 사실을 왜곡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인간사고인 철학과 신학에 대한 그 학문적 사명의 형태에 대해 발했다. 철학은 질문하는 학문이고, 신학은 대답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학은 대답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라 한다.

인간 신학 역사에 가장 큰 오명적 상처, 고칠 수 없는 상처를 준 이론이 진화론이다. 진화론(유신)에 의하면, 유인원 침팬지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정체성과 생명의 존엄성에 가장 부끄럽고 창피한 모욕적인 논리다. 원숭이를 조상으로 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다는 말인가? 원숭이의 후손이 그렇게 자랑스런 일인가? 진화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로서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것, 또한 동조하는 것 역시, 참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자들을 학문적 지도자로 신학교에서 세우는 것은 성경말씀을 다 부정하자는 것을 눈뜨고 허용하는 꼴 그 이상의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래 전 작고하신 한신교회 고 이중표 목사님은 설교학 강의에서 “좀 배웠다는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영혼을 다 죽이는 설교를 하고 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성경의 말씀 외에, 또는 변경하여 가르치는 사람들은 바른,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육지도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인간을 영적으로 죽게 만드는 지도자들이라 할 수 있다.

로마를 구원한 바울 사도, 독일을 구원한 마틴 루터, 프랑스를 구원한 존 칼빈, 영국을 구원한 존 웨슬리, 미국을 구원한 디멜 무디, 대한민국을 구원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감리교 최병헌·전덕기·이용도 목사, 장로교 길선주·주기철·손양원 목사, 기성의 이명직·이성봉 목사, 문준경 전도사, 순복음 최자실·조용기 목사, 나사렛 정남수 목사, 구세군 창설자 윌리암 부스. 이들은 한결같이 영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지도자들이었다. 오늘날 온세계에 복음주의 신학교는 영을살리는 교육기관, 자유주의 신학교는 영을 죽이는 교육기관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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