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
최창국 교수 ©유튜브 영상 캡처

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29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한 점의 그림이 설교보다 더 강렬할 때도 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많은 교회 공동체가 묵상과 기도를 위해 예술 작품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며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어디서 나타나건 환영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회가 예술 작품에 단지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 작품의 가치와 형성적 힘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교회는 예술 작품을 단지 윤리적 접근이 아니라 심미적으로 볼 줄 아는 자질도 길러야 한다. 본질적으로 진선미는 하나님께 속한다. 따라서 아름다움과 신적인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했다.

또한 “기독교 초기 신학자들은,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것의 관계를 구분했다”며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다른 이름인 반면, 아름다운 것은 신적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경험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경험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영적인 기초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성경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그림으로 그린 성화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성화는 단지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한다”며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아주 단순한 해석이다. 성경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성화와 성상으로 표현한 것은 단지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과 색으로 하는 심미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화와 성상은 성경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선과 색과 모습으로 한 예술적 표현이며, 심미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본문이지만, 성화와 성상과 같은 예술 작품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며 “성화와 성상은 심미적으로 해석된 본문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글로 기록된 된 성경뿐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도 성령의 은총과 관계된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신이 충만케 된 사람으로 처음 언급된 사람은 브살렐이다. 그는 지혜와 총명과 지식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다”며 “그는 ‘공교한 일을 연구하며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였다. 특히 브살렐이 주어진 재능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든 것을 성령 충만의 형태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칼뱅은 브살렐의 예술적 솜씨를 성령의 일반은총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칼뱅은 성령의 일반은총으로서 예술적 솜씨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성화의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며 “교회는 성화와 성상도 성령의 일반은총의 선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칼뱅은 또한 건전한 종교적 예술 작품이 가진 영적 가치도 인정했다”며 “예술 작품은 자신과 세상을 보는 안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성화와 성상과 같은 예술 작품의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하나님과 보다 더 풍성하게 대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상태나 하나님의 손길을 다루는 예술 작품을 묵상할 때, 우리는 보다 더 깊은 영적 의미들을 묵상해 낼 수 있다. 게다가 문자로 된 성경 이야기를 읽는 것보다 한 편의 그림으로 표현된 성경 이야기가 더 강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기도의 실천에서 단지 음성 언어만이 아니라 그림이나 형상도 중요한 기도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예술 작품 만들기를 통해 기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경의 한 본문을 읽고 묵상한 후에 바로 음성으로 기도하기보다는 묵상한 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형상 만들기를 통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성경 묵상을 통해 깨달은 내용을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해 하나님 앞에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기도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는 단지 음성으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매개로 삼아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음성의 언어만이 아니라 예술적 언어를 통해서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형상을 통해 더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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