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불쾌증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원인은 정신사회적(psycho-social)이며, 인격발달과정과 관련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여기서는 성정체성장애, 젠더정체성장애, 트랜스젠더/젠더퀴어, 젠더불쾌증 등을 하나의 병으로 보고 기술한다.)
“젠더“와 ”정체성“ 자체가 정신사회적 개념이다. 이를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억지이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성정체성 장애의 원인에 대한 정신사회적 이론은 많이 연구되어 왔다.
정체성은, 성(젠더)정체성이든, 가문의 정체성이든, 민족정체성이든, 정치적 정체성이든, 종교적 정체성이든,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생물학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성 정체성은 다른 여러 정체성 문제와 같이 정신적 인지(cognition)와 의도적(의지적) 결정의 문제이다.
소아기에 관찰되는 트랜스젠더 행동(상대 성 복장을 좋아하거나 상대 성 놀이를 선호함 등. 흔히 시시보이 또는 왈가닥 tomboy 소녀라 불림)은 유전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심리적 혼동 때문으로 보며, 대개 사춘기를 지나면서 안정되어 시스젠더로 변한다. (이를 desistance라 한다) 어린 시절에 트랜스젠더가 성인기까지 고착(persistence)되는 경우는 소수이나 그 이유 역시 정신사회적이다. (차후 자세히 설명 예정)
개인의 여러 정체성은 인격이 발달하면서 정신사회적 상황에 의해 주어지거나 선택되거나 하여 결정된다. 정체성 발달에 기질, 체질 등 여러 유전적 영향 등에 의해 타고나는 요소들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대개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 자아(ego)와 현실적 사회환경과의 상호작용(경험, 훈육, 학습)에 의해, 개인의 선택이나 결정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성숙-확고해져 나간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미국에 살면서 미국인의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고, 두가지 모두 가질 수도 있고, 둘다 포기할 수도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남자이면서도 여자라고 느끼는 것, 또는 여자이면서도 남자라고 느끼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를 입증하기 어렵다. 한 개인의 남성다움(masculinity) 또는 여성다움(femininity)도 그 개인의 타고난 유전인자에 의한 체질이나 기질과 관련된다. 대개 X,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에 따른 성호르몬(sex hormone)의 영향을 받아 발달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를 그대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면 트랜스젠더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트랜스젠더가 되는 이유를 개인의 심리문제,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의 정신역동 이론내지 정신사회적 이론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우선 정신분석적 설명이 있다. 정신분석(psychoanalysis)은 성정체성장애는 정신성발달과정 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주가 되는 남근기 수준에 고착된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상적으로는, 부모-자식 삼각관계에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동일시(同一視 identify)하여, 또한 딸 아이는 어머니를 동일시하여, 성 정체성(identity)을 형성함으로 콤플렉스의 갈등을 마스터한다. 그러나 부모-자식 삼각관계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마스터하지 못하여 이성의 부모를 과도하게 동일시하면, 성정체성 발달에 장애가 생긴다. 이 과정은 무의식이다.(즉 자신은 왜 트랜스젠더가 되었는지 모른다.)
역동이론(dynamic theory)은, 정신분석 이론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성적 갈등문제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일반적인 갈등과 그 해결을 포함시켜 인간행동과 정신장애를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젠더비순응(gender-nonconformity)에서 순응(conformity)이라는 말이 주목된다. 순응의 반대는 저항이다. 주어진 사회환경이나 규범(norm)에 순응하는가 저항하는가는 의식이 있는 사람 특히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적 과제이다. 비순응은 돋보이지만 위험이 뒤따르기 쉽다. 순응은 안전하지만 죄의식이나 열등감의 위험이 있다. 청소년에서 보는 비순응은 자존심이 강할 때도 나타날 수 있으나 자존심이 약할 때도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잘 살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젠더정체성 장애는 일종의 망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역시 “무의식” 속에서 진행된다.
청소년기에 정체성 획득 과정에서 한동안 비순응과 저항을 보이지만, 대개 청년기로 성장하면서 현실 환경에 순응적이 된다. 즉 다수의 트랜스젠더가 시스젠더로 변한다. 소아-청소년기의 (젠더 이슈든 다른 이슈에서든) 비순응은 매우 유동적(fluid)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은 트랜스젠더의 원인을, 소아기 때 동성의 부모와의 안전한 애착관계 형성에 실패하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애착형태와 트랜스젠더와의 관련성에 대한 한 연구는, 95명의 젠더불쾌증 환자의 27%가 안정(secure)된 애착, 27%가 불안정(insecure)한 애착, 46%가 파괴적(disorganized) 애착으로, 대조군에 비해 애착 파괴(attachment disorganization)가 더 심했다. 또한 조기에 4가지 이상의 다수 피해(polyvictimisation)를 받아 “complex trauma”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들 중, 트랜스여성은 (시스 남자에 비해), 아버지가 간여적(involving)이며(잠재적으로 자기애적), 정신적 및 신체적으로 학대적이었고, 어머니로부터는 더 흔히 분리된 상태였다. 저자는 추론하기를 그런 아버지는 자신의 자기애적 반영으로 아들을 사용한 듯하며, 그래서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자기를 학대하였다고 보고, 동일시의 대상으로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대변하는 남성성을 거부하고, 나아가 자신의 남성적 신체를 멸시하고, 자신과 분리된 어머니처럼 되기(애착)를 추구한다고 설명하였다. 트랜스남자의 경우 (시스여성에 비해) 어머니가 더 간여적(잠재적으로 자기애적)이었고, 아버지로부터는 더 흔히 분리되고 방임되었다. 저자들은 이런 트라우마를 단순히 “위험요인”이 아니라 “원인”으로 보아야 주장한다.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아이의 경우, 그 어머니에게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다. ① 아들과 “행복한 공생관계“(blissful symbiosis)에 매달림. (아들도 어머니에게서 떨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함) ② 심각하게 스트레스 받는 매우 불안한 여성이다. 한편 그녀의 꼬마 아들은 심리적 균형을 위해 어머니 상에 대해 방어적 융합을 하고 있다(불안한 어머니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다). 또한 소아는 스트레스가 많은 또는 도전적인 상황에서, 과잉으로 각성하는 체질적 취약성, 즉 비정상적으로 예민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편 아버지도 정상적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아들의 여성적 행동을 관용하고 인정하는 등, 아내의 결정에 한발 물러서 그녀를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젠더장애를 가진 소녀의 경우, 그 소녀들의 어머니들의 77%가 우울증의 과거력이 있었고, 딸들이 어머니가 약하고 무능하고 무력하여 도움이 안된다고 느껴 어머니를 동일시하는데 무의식적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즉 직, 간접적으로 어머니는 딸에게 여자라는 상태는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런 외상적 배경에서, 연구자들은 젠더정체성장애를 가진 많은 소녀들이 힘(권력), 공격성, 및 보호에 대한 환상에 집착해 있다고 하였다.
역동적 이론에 의하면 성체성성은 거의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인지하지 못한 채 중간에 변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젠더의 유동성(fluidity)에 해당된다. (계속)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연세카리스가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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