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대학교 웨슬리신학연구소(소장 김성원 교수)가 7일 오전 8월 웨슬리 설교연구모임을 온라인 줌을 통해 진행했다. 이날 배명지 박사(웨슬리신학연구소 연구원)가 ‘율법의 기원, 본성, 속성, 용법’이라는 주제로 웨슬리의 설교 내용을 토대로 발제했다.
웨슬리는 “그동안 율법이란 주제는 많이 연구되지 않았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주제임이 분명하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이란 말을 쓸 때 그가 의미했던 것은 고대 로마의 율법도 아니고 모세의 의식에 관한 율법도 아니었다”며 “그의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율법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도덕법”이라고 했다.
이어 “바울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율법을 무효로 하였다는 것과 함께, 그것이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토대 위에 도덕법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하여 로마서 7장까지 이끌어 온 것”이라며 로마서 7장 7, 12절을 인용해 “곧 율법이 없었다면 그 악한 욕심이 죄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며 율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써 기원, 본성, 속성, 용법에 대해 설명했다.
◆ 기원
웨슬리는 “율법에서 최상위 법이라 불리는 ‘도덕법’의 기원을 추적하자면 가장 오래된 때로, 즉 창조된 때를 넘어 가야 한다. 위대하신 창조주께서는 지성적인 존재들을 만드시고 기뻐하셨을 뿐 아니라 인간들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기뻐하셨다”며 “그리고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하셨고 또 어떤 것은 거부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유한한 존재가 알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모든 진리의 완전한 모범으로서 율법(도덕법)을 인간들에게 주셨다”고 했다.
이어 “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이것을 순종함을 통해 저들의 본성이 완전해지고, 진정한 행복이 계속 증가하게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하신 때에 지성적인 존재들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흙에서 일으키시어 생명의 숨을 불어놓으시고 선악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다른 돌판이나 부패할 물체가 아닌 인간의 마음에 직접 손으로 율법을 새겨놓으셨다”며 “바로 이것이 율법의 기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인간은 배반하였고 이 율법을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그래서 인간이 가진 이해의 눈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낯설게 된’(엡 4:18)것과 같은 정도로 어두워졌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인간과 화해하셨고, 죄 많은 피조물의 마음에 다시금 어느 정도 율법을 다시 새겨 넣으셨다”고 했다.
이어 “그분께서는 특별한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좀 더 완전한 율법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셨다. 그런데 그들이 율법을 이해하는데 더디기 때문에 율법의 핵심 내용을 두 돌판에 적어주신 다음 명하시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대대로 가르치도록 하셨다”며 “그러나 이 율법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한 분만이 홀로 성령을 통하여 이것을 계시하실 수 있고, 이것을 지킬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본성
웨슬리는 “사도바울이 말하는 율법은 ‘도덕법’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종교의식법이나, 모세의 율법하고는 다른 것”이라며 “이 도덕법은 영원에 거하시는 높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불멸의 묘사’”라고 했다.
이어 “그분의 본성에 대해서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만,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보일 수 있게 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며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피조물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그의 본체의 드러난 형상”이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덕(virtue)이 하나로 되어 하나님께서 비춰주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얼굴을 마주 대하듯이 바라 볼 수 잇게 형체를 갖추게 되고, 이것이 바로 율법”이라며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율법은 최고의 불변하는 이성이며, 공정성이며, 모든 사물의 영원한 적합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린 신앙적 상태에 있는 한, 우리는 부분적으로 아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예언 즉 하나님의 일들에 관해 말하는 것도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어두움 때문에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을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곧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게 될 것인데, 그것은 온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인 것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불어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한 정신을 모방한 것이고 신적 성품을 옮겨 적어 놓은 것”이라며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가장 좋은 산물이고, 그의 본질적인 지혜의 가장 찬란한 발산이며 지존자의 가시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 속성
웨슬리는 “율법의 속성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먼저 율법은 거룩한데,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로 ‘순결’(약 3:17)한 것, 곧 내적으로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이며 “또한 이 율법을 영혼뿐만 아니라 삶 속에 옮겨서 기록해 놓을 때야말로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종교, 곧 하나님께 드리는 순결하고 깨끗하며 더렵혀지지 않은 예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실상 율법은 매우 순결하고 정결하고 깨끗하고 거룩한데, 그것은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소산이며, 하나님을 닮은 것이기 때문”이라며 “마치 하나님께 대하여 ‘죄’가 원수가 되듯이, 율법도 ‘죄’에 대하여 원수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율법이 죄 그 자체라든가 죄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율법은 죄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발견하는 것이며, 어두움 속에 감추인 것들을 찾아내어 밝은 대낮 한 가운데로 끌어내기 때문”이라며 “비록 계명이 죄를 드러내는데 사용될 지라도 그것이 더럽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여전히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다”고 했다.
그는 “율법의 두 번째 속성은 의롭다. 그것은 모두에게 의롭게 돌아가야 할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며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 관련하여 무엇이 옳으며 무엇을 마땅히 행하고 말하고 생각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규정하여 준다”고 했다.
이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율법의 법칙이, 사물들의 본성과 적합성 그리고 관계성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뜻에 의존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모든 사물들 자체가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며 “모든 사물들은 목적을 갖고 창조되었는데, 그 목적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이렇게 볼 때 율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창조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올바르고 의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율법의 세 번째 속성은 선한 것이다. 율법의 기원을 하나님에서 찾게 되면 이는 당연히 율법 또한 선한 것이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이라며 “‘율법을 폐하기 위함이 아니요 성취시키기 위하여’(마 5:17), 때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결국 자녀들의 마음속에 그것을 기록하시고 그의 모든 원수들을 발아래 정복하심으로, 그는 자신이 중보하시는 나라를 아버지께 넘겨드려 하나님께서 만유 안에 주재가 되시도록 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 용법
웨슬리는 “율법의 첫 번째 용법은 세상에서 ‘죄를 깨닫게 하는’ 일”이라며 “율법의 첫 번째 용법은 죄인을 죽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신뢰하는 생명과 힘을 파괴하고, 자신이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율법의 두 번째 용법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살 수 있도록,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이끈다”며 “율법은 죽이고 또한 살리는 이 두 직분을 감당함으로써 엄격한 교사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또한 “율법의 세 번째 용법은 우리를 계속 ‘살아있게’ 만든다”며 “이것은 복되신 성령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과 더 크게 교통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위대한 수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율법은 아무도 의롭게 못하고 단지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따름이다. 그러나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을 때, 그것이 해야 할 그 이상의 직분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 그리스도와 함께 있도록 만드는 일”이라며 “왜냐하면 율법은 계속적으로 모든 신자를 자극하여 그들이 율법의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를 볼수록 더욱 더 서로 권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불어 “사도 바울이 말했던 ‘노예의 멍에를 다시는 메지 말라’(갈 5:1)는 것은, 결코 유대교적인 노예의 멍에나 지옥의 공포에 대한 멍에가 아니라, 죄의 멍에, 즉 속으로나 겉으로 율법을 범하는 죄의 멍에를 다시는 메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 해설
배 박사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돌판이 아닌, 친히 인간의 마음에 이 도덕법을 새겨 넣으신 것이다. 비록 태초에는 완전했던 이 도덕법이 인간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타락했지만, 웨슬리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도덕법이 회복되었음을 말한다”며 “즉 선행적 은총으로 어느 정도 회복된 ‘도덕법’이, 이제 중생과 성화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그 기능들이 회복되어져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웨슬리에게 있어서 율법의 역할은, 구원을 주는 역할이 아닌,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역할이며, 결국 구원 이후의 성화의 삶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삶을 지속시키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구약시대와는 다른 도덕법과의 관계 설정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용납’하심에 있어서, 율법의 완전한 준수를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것, 이것을 ‘은혜로운 용납’, 즉, 은총이라고 부른다”며 “그렇다면 이 은혜로운 용납, 곧 은총을 분명히 깨달은 자들은 이제 그것에 응답하는 반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도덕법”이라고 했다.
이어 “모세의 많은 율법들 중 유대교의 전례적·민사적이고, 의식적인 법들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필요성이 없어졌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도덕법은 영원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유지해가는 것으로서 계속 인정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도덕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분명한 것은 이 하나님 사랑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부활”이라며 “결국 이 은총을 깨닫고 그 은총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깊이 알고, 그것에 응답하여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곧 성화의 삶, 성결한 삶이며 이것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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