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2. 역설의 진리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살고 싶어 할수록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어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겐 두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죽음과 그리스도 밖에서 죽는 죽음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영생의 존재입니다.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은 이 죽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그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저들은 그냥 죽는 것입니다. 코에 달린 호흡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 효용이 다하면 멈추는 것뿐입니다. 마치 건전지 같은 물건입니다. 약발이 다 떨어지면 건전지는 버려집니다. 기름이 소진되면 차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에너지가 있다고 가르치심에도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결국 저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다가 기운이 다하면 쓰러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죽음을 ‘미련한 죽음’이라 부릅니다. 육신만 살고 영혼이 죽는 죽음이기에 가장 어리석은 죽음이라 봅니다.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미련한 죽음’은 엄청난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모든 소중한 보물들을 모조리 잃어버린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는다면 모든 귀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릴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잃어버립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요 구원의 요체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인생의 핵심은 뚜렷하게 하나의 역설을 지향합니다. 그것은 바로 “죽어야 산다”라는 대명제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적인 차원에선 분명히 모순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간이 다시 태어나야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이전의 생명을 포기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자연인 니고데모는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밤중에 몰래 예수님에게 찾아와 어떻게 거듭난다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은혜 없이 거듭난다는 말을 이해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어야 산다’는 이 역설의 진리는 오직 성령의 세례를 통해 거듭난 사람만이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은 사람만이 이해하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 체계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분명히 십자가는 우리를 죽이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 도구에 매달려 죽어야만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성적 차원에서 모순처럼 보입니다. 도올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 모순을 지적하며 마치 기독교가 결정적인 허점을 소유하고 있다고 공박했습니다. 거듭남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연인 입장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하나님의 역설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두고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명해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회가 선포하는 것은 이성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참된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성이 아닌 신앙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증명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엔 신앙이 필요없습니다. 그것은 과학입니다. 과학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나 신앙은 실험이나 논리적 증명을 무시하거나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국한하지 않고 과학을 근거로 삼지도 않습니다. 신앙은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연인, 즉 거듭나지 못한 도올 같은 사람과 완전히 대립합니다. 도올의 글에는 한 번도 자신의 회심이나 거듭남에 대한 체험이나 인식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성적인 차원에서 매우 솔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결말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 번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사고는 자연인의 사고와 정면 충돌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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