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들은 기독교 교리를 제정한 초기 교부들, 기독교 변증가들, 종교 개혁가들, 기독교 사상가들, 그 복음을 지키느라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 이러한 모든 선배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환난과 상처를 받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굳은 신앙 지조에 의해 우리 자신의 믿음과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지금도 굳세게 서 올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세속 철학이나 이단사설로 많은 도전을 받아 혼란을 겪으며 지내왔다. 그러나, 그 때마다 교회는 확고한 믿음의 터 위에 서 있어서 환난을 극복, 오히려 더 강하게 성장해 왔다.
성경이 형성될 즈음,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썼다. 골로새서 2장 8절에 "철학과 그것의 헛된 속임수를 조심하라”는 글이 나온다. 이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철학은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학문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철학은 인간에게 매우 유익한 학문이다. 철학은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이성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역사운행의 능력과 은혜를 알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목적의 학문이다. 신학과 전혀 배치되는 학문이 아닌, 오히려 신학을 이해하도록 돕는 학문이다. 성경을 바로 알고 바른 복음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성이라는 식별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인간들은 이를 잘못 사용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와 뜻, 섭리와 역사적 능력을 부정하는 도구로 사용하므로 바울의 경고처럼 불명예를 써 왔던 것이다.
여기서 철학을 조심하라 했을 때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한 말이다. 첫째, 에피큐러스(Epicurus) 학파의 쾌락주의(Hedonism)다. 주전 200년 경, 그리스 철학자 에피큐러스는 쾌락주의 성향의 철학을 구사했다. 그의 쾌락주의는 먹고 마시는 것, 사랑하는 일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든가, 여행을 통해 얻는 즐거움 같은 것에 초점을 두었다. 사실, 말이 쾌락이지, 그의 철학은 일상 생활에서 행복하게 생활하자는, 인간본성이 그렇다는 매우 단순하며, 현실적인 주장일 뿐이었다.
에피큐러스가 쾌락주의를 주장한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그리스 아테네는 스파르타라든가, 페르시아와 같은 주변 국가들과 수 많은 전쟁을 하였다. 그래서 전쟁으로 인한 공포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와 식생활이 궁핍하였기 때문이고, 사랑이고, 여행이고 뭐고 할 여유가 없던 상황이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쾌락을 철학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빌미삼아, 본래 쾌락주의의 뜻을 과도하게 넘어 난잡한 쾌락으로 행동했던 것이 일상생활화 되어 좋지 않은 철학으로 인식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사도행전 17장 18절에, 바울은 에피큐러스 학파, 그리고 스토아 학파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논쟁을 펼쳤는데, 여기에 인간 철학자들이 부활을 부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들은 화려한 언변으로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철학자들의 초등학문 같은 주장은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조심하라 한 것이다. 어쨌든, 사도 바울은 인간존재와 연관하여 구원의 의미가 없어 보이는 그런 내용 때문에 세상철학을 조심하라 한 것이다.
이번에는, 예수 승천부터 복음서가 형성되기 시작 할 즈음 영지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영지주의야 말로 기독교 교리 정립에 큰 방해요소로 나타나게 되었다.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지 아니하였다 주장했다. 이유는 하나님의 신성을 가진 아들 예수가 어떻게 타락의 대명사인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만 영적으로만 왔다는 가현설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그런 말들이 그리스 지역에 편만해 있었기 때문에 영지주의를 조심하라는 뜻으로 바울은 세상철학에 대한 경계어린 당부를 한 것이다.
정통복음과 다르게 갔던 또 하나의 예는, 초기 기독교 교회는 교리정립 즈음에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는 318년경, 아리우스(AD 250~336) 논쟁이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 Alexander시절, Athanasius(AD 296~373)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에 따라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신인 동시에 아들의 격을 가진 그리스도”라는것을 주장하였는데,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아리우스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지 않고,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며, 본성적으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과 동일하지 않다, 창조되었기 때문에 은혜와 도움이 필요하고, 범죄할 수도 있다, 예수가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켰다. 결국, 콘스탄틴 대제는 니케아회의를 소집하게 되었고, 여기서 아리우스는 이단사설 주장자로 판결을 받았다.
이와 같이, 오늘 날에도 갖가지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간주의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여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이단들이 많다. 진화론을 넘어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자들 역시, 그런 범주에 속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는데, 하나님의 창조에 진화론을 갖다 붙여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창조론에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게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쟁쟁한 신학자들의 신학적 노력에 의해 교리와 신학이 확고하게 세워졌는데, 무슨 기발한 논리라고 이단적 요소가 있는 내용을 주장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안타까운 일은 성경과 다른 내용을 강조하는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론에 동조는 않더라도 주장하는 자의 친구니까, 아니면 가까우니까 인간적 감정으로 감싸는 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또는, 묵인하는 자들도 있고, 방관하는 자들도 있다. 동일범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사설을 내놓거나 주장하거나, 동조하는 자들을 과감히 척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재앙을 파멸하기 위해 신론, 창조론, 기독론을 훼파하려던 자들을 추방하고 기독교교회를 바로 세워 놓은 선배들의 업적을 지금도 이어가야 한다. 한국에는 각종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체가 많이 있지만, 복음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아 이 역사적 사명을 지속적으로 이루기가 어려운 입장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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