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의사 조력자살’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 일고 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명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교계 생명 의료 단체들은 자살을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정치적 법제화 시도라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조력 존엄사’란 환자 본인이 원하면 담당 의사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뜻한다. 의식 있는 환자 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의사가 약을 환자에게 직접 투약하는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그런데 고통이 심한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존엄사’라 부르는 자체가 위선적이다. ‘조력자살’이란 이름이 붙게 된 건 의사가 직접 약물을 직접 투여하지 않고 환자에게 약을 주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건데 아무리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도 자살은 자살이지 ‘존엄사’로 둔갑할 수 없다.

‘조력자살’은 네덜란드 스위스 등 해외 일부 국가에서 허용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안락사’와 함께 모두 불법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부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합법화됐다.

국회에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의 핵심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고 있는 말기 환자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다. 자신이 선택하는 죽음이라서 ‘존엄사’라고 한 것 같은데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존엄’이란 뜻과 전혀 맞지 않는다.

법안에 의하면 ‘조력 존엄사’ 대상이 되기 위해 복지부 장관 소속 ‘조력 존엄사 심사위원회’에 조력 존엄사 희망 의사와 자신 상태를 증빙할 수 있는 서류 등을 내야 한다. 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된 뒤 1개월이 지난 시점엔 본인이 ‘조력 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의사 2명 이상에게 표현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현행 연명 치료 중단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의 동의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조력 존엄사’는 환자 본인 의사 표명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절박한 고통과 싸우고 있는 환자 본인의 선택을 서류와 간단한 절차로 증빙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의사의 확인 절차를 거치게 한 것도 환자의 자살에 의사를 끌어들인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안 의원과 법제화에 찬성하는 일부 의료계는 국민 10명 중 7명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자살’ 법제화에 찬성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고 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지난해 3~4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3%가 법제화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목숨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끊는 행위를 고작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만 가지고 합리적 근거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사 조력자살은 본인 의사로 자기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섣불리 법제화할 경우 오용·남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그럴 경우 사람의 목숨을 쉽게 끊을 수 있는 갖가지 수단이 ‘존엄사’로 대치돼 자살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풍조가 만연할 게 불 보듯 뻔하다.

교계도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지난 24일 성명을 내고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은 “인간의 생명을 자의적으로 종결시키는 반생명적인 위험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 법안이 소위 ‘조력존엄사’라는 말로 우회하여 표현한 행위는 정직하게 말하면 ‘의사에 의한 살인’이자 ‘자살 방조’”라고 했다.

한국복음주의의료인협회(한복의협)도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조력 존엄사법’ 제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언제 자살을 존엄하다고 합의한 바 있나. 자살이 존엄한 것이라면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존엄하지 않은 것인가. 많은 국민이 말기의사결정으로 가장 원하는 것은 ‘연명의료결정’이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이 아니다”라면서 “국민의 존엄하게 살 권리를 훼손하고 국민을 끝까지 인간답게 돌볼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악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조력존엄사법’의 입법 취지는 “말기 환자에게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삶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삶을 끝낼 자기결정권을 법이 제도화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이는 즉 법이 자살을 유도하고 권장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모든 자살 행위가 정당성화 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사람을 죽이는 조력 살인자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결국, 의료의 본질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져 갖가지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

지금도 매 순간 끔찍한 고통과 싸워가며 하루하루 생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국가와 의료계가 한다는 게 고작 약을 줄 테니 먹고 죽으라는 건가. ‘조력존엄사법’은 자살 행위를 존엄으로 미화했을 뿐 자살을 권유하는 살인 도구일 뿐이다. 생명 경시가 땅바닥에 추락하기 전에 당장 폐기하기 바란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