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북한을 탈출해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강제로 북송되지 않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탈북민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지시해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탈북민의 날’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을 찾는 북한 동포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단 한 분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 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란 것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 책무란 점을 다시한번 대내외에 각인시킨 것이란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북한 주민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란 건 오래전에 헌법에 명시된 사항이지만 사회적인 공감대와 거리가 있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분단 이후 오고 가지 못하고 서로 다른 체제에 사는 사람을 동족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법적으로 같은 신분이란 인식은 피부에 와닿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국민 동질성의 문제를 국가나 사회가 나서 강요할 성질은 아니다. 사회 저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뿌리내리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현실에서 대통령이 탈북민들 앞에서 이 점을 다시 명확히 짚었다는 건 국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 의무를 다할 뿐 아니라 보편적 정서로 느끼는 거리감까지 없애는 데까지 신경 쓰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하겠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무리 확고한 의지를 밝혀도 정부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뒷받침을 하지 않으면 일회성 다짐으로 그치거나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탈북민 채용을 확대하고 탈북민을 고용한 민간 기업에는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세부적인 지원책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약속이 장황한 수사(修辭)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탈북민의 날’의 법적 근거가 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17조 4항에는 ‘탈북민을 채용하는 기업에 대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재정지원을 하거나 조세 관계 법률에 따라 세금을 감면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이 신설된 2010년 이후 탈북민을 채용한 기업에게 돌아간 혜택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탈북민 지원을 위한 법률이 제정된 지 14년만에 탈북민들의 정착 자립에 장애 요소가 된 걸림돌이 이제 비로소 치워지게 될지가 관심사다.

그런데 이날 윤 대통령의 기념사 중에 유독 가슴에 와 박히는 대목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통받는 북한 동포를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찾는 북한 동포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 분도 돌려보내지 않을 것”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대통령으로서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건 역대 그 어느 대통령도 반복적으로 한 다짐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면서 “정부는 자유를 향한 여러분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 건 시사하는 지점이 다르다. 북한 김정은에 굴종하는 자세로 일관했던 지난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한 동시에 지난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철저히 외면했다. 탈북한 어민을 강제 북송한 사건은 당시 문 정부의 정체성이 보편적 인권이 아닌 독재자에 비위를 맞추는 데 치우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문 정부는 입으론 평화를 말하면서 자유와 평화, 생존을 억압당하는 북한 주민을 외면하고 철저히 김씨 3부자 체제를 옹호했다. 이런 정부에서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자유를 찾아 탈북한 국민을 향해 “배신자”라 고함치고 “북으로 돌아가라”는 막말을 퍼부은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은 감시·통제·억압으로 외부 정보 유입을 차단하면서 이를 어기는 주민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고 있다. 중국에 건너온 탈북민의 입에서 ‘남조선’이 ‘한국’인 줄 몰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도의 폐쇄적인 체제에서 북한 주민은 노예와 가축 신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지금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건 한미군사동맹이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라고 입을 모은다. 한류 콘텐츠가 북한 사회에 유입되면서 한국이 얼마나 자유롭고 잘 사는 나라인지 알게 되고 그것이 북한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날까 봐 겁먹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이 USB에 담긴 한국노래를 들은 중학생을 공개 총살했다는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무자비하고 광범위한 인권 탄압은 북한 체제가 갈 데까지 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 학생들까지 마구잡이로 처형하고 휴전선 일대에 장벽을 치고 지뢰를 매설한다고 자유와 생존의 본능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온 탈북민은 3만4천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의 폭정이 심화할수록 탈북민의 수가 급증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은 통일을 멀리 있는 ‘신기루’로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북한 주민은 통일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한다. 자유와 인권, 생존을 위한 탈북이 이어지면 전쟁 없이 통일하는 날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정부와 사회, 한국교회가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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