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에 참가해 성 소수자를 축복한 목회자에 대한 조사 처리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 통합)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예장 통합 전남노회가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해 성 소수자 단체인 ‘무지개예수’와 함께 성 소수자 축복식을 거행한 엄 모 목사에게 경위서 제출 및 출석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 교단 내 목회자의 동성애 지지 옹호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엄 목사는 지난 6월 1일 열린 서울 퀴어축제에 참여해 성 소수자 부모모임 부스에서 ‘프리 허그’ 행사를 홍보하고, 축복식도 함께한 개신교 목회자 30여 명 중 한 명으로 지목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속 노회인 전남노회 포괄적차별금지법동성애대책위원회가 6월 11일 전체 회의를 열어, 조사하기로 결정하고 출석 통지서를 보내게 된 것이다.
소속 노회가 엄 모 목사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낸 것만으로 그의 징계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현재로선 일단 노회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경위를 파악하는 수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사 결과 동성애 지지·옹호를 금지한 교단 헌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정식 징계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장 통합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천명한 교단 중 하나다. 지난 2017년 제102회 총회 때 교단 헌법에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개정했다. 또 총회 마지막 날 “동성결혼 합법화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건전한 성 윤리는 물론 건강한 가정과 사회의 질서까지 붕괴시킬 것”이라는 내용의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반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엄 목사가 단지 퀴어축제에 참석한 것만으로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옹호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교단도 동성애 반대 성명을 발표할 당시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인정하며 혐오와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어 변화시키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힌 만큼 목사로서 성 소수자들이 죄의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퀴어축제 중 성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축복식을 진행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성 소수자를 축복하는 건 그들이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막고 오히려 그 죄성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서울 퀴어축제는 숱한 논란을 낳았다. 그중 일부 교단 소속의 목회자들이 성 소수자 그리스도인과 성 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단체 ‘무지개예수’와 함께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 앞에서 성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무지개 축복식을 거행한 사실이 교계에 알려지면서 공분을 자아냈다.
당시에 ‘무지개예수’과 함께 축복식을 진행한 30여 명의 목회자 중에는 대교단에 속한 이들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설만 무성했을 뿐 그가 누구이고 어느 교단 소속인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채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예장 통합 측 전남노회가 퀴어축제 축복식과 관련한 문제로 소속 목사에게 출석 통지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떠돌던 설이 사실이었음이 입증된 셈이 됐다.
전남노회 차별금지법동성애대책위원회는 노회 소속 목사가 서울에서 열린 퀴어축제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퀴어축제에서 성 소수자를 축복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그에 합당한 엄중한 처벌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출석 통지가 당장은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지만 그 수준으로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보통 조사를 시작할 때 관련 증거 자료와 증언 등을 확보하고 최종 단계에서 당사자를 불러 확인하기 때문에 엄 목사의 행위에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될 경우 바로 징계 절차에 들어갈 수도 있다.
퀴어축제에 참여해 성 소수자를 축복한 목사를 교단이 중징계한 대표적인 사례가 기감의 이동환 목사다. 이 목사는 지난 2019년 인천 퀴어축제에 참여해 성 소수자를 축복한 혐의로 기소돼 교단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정직 2년에 처해졌으나 그 후에도 계속 동성애를 옹호하는 행보를 계속해 올해 3월 4일 총회 재판위원회가 그에게 ‘출교’라는 최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엄 목사가 이와 똑같은 길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조사 단계에서 자신이 행한 일에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돌이킨다면 재판까지 가지 않고 구두 경고나 견책 수준으로 그칠 수도 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기감에서 시작된 동성애 옹호 파문이 예장 통합으로 옮겨가는 모습인 건 해당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일각에선 “목사는 누구든 차별없이 축복한다”라는 논리로 성 소수자 축복이 목사로서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목회자로서 죄의 행위를 눈감아주고 더 나아가 축복하는 건 자기 부정이다. 목사가 성경의 가르침과 교단의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그 어떤 논리와 변명으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