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넷째 십자가는 자기 부인입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우리는 십자가를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엇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주님이 정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소개한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 24)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모든 개혁의 출발은 ‘자기 부인’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자기 부인’은 철저히 십자가상에서 나 또한 주님처럼 못박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를 어떻게 진다는 말입니까? 주님처럼 십자가에 진짜로 못 박혀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라는 소리는 아닐 것입니다. 괜한 퍼포먼스 한다고 고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런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시길 권면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귀에 들리는 이 말씀에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주님께 요구합니다. 제발 무거운 십자가 같은 것은 나로 하여금 지지 않게 하시고 이 인생으로 하여금 괜한 고생길에 들어서지 않게 하시고 아무쪼록 모든 일이 복을 받아 이생에서 복락을 즐기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나 뿐 아니라 내 가족들도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삶은 그런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 어찌 나쁘다 하겠습니까? 그런데 복을 받기 전에 그리스도인은 먼저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저 목사의 언급은 더 지독합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는 삶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십자가는 우리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극도의 고통을 줄 것이고, 우리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 온 우리의 명성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굴복시키고 우리의 이기적인 삶을 끝장낼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의 충만함 가운데 다시 일어나 선행으로 가득한 전혀 새롭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더러운 수건이 있다고 칩시다. 거듭나기 전에 우리가 더러운 수건이라 칩시다. 이 더러운 수건이 다시 깨끗해지기 위해선 빨고 빨아 거듭 세탁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더러운 수건이 하얗게 되는 날 수건은 예전의 깨끗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는 분명히 그 자체로는 괴로운 대상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너머에 있는 주님의 영광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바로 십자가 뒤에 있는 찬란한 하나님의 광채를 체험하면서 종교개혁의 의지를 굳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십자가는 고통이 아닙니다. 영광을 위한 연단일 뿐입니다. 이 연단이 싫다고 회피하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길 소망합니다.

다섯째, 무엇보다 십자가는 참된 능력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들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마다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성경에 기록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체험을 하기 전에는 예수쟁이들을 체포하는 데 혈안이 된 핍박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자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복음을 앞장서 전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상숭배에 젖어 있던 많은 미혹된 자들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는 세상의 가치관, 도덕적 규범들과 정신적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십자가상에서 지혜로운 자로 탈바꿈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능력이 없던 자가 십자가의 능력을 받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롬 1:18)

십자가에서 그런 능력이 나타난 것은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생명의 능력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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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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